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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ug 12. 2023

친한 선배의 여자친구 (2)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D-2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60



형의 전화는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어제 잘 들어갔어?“


“네, 덕분에 잘 먹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근데...“


“네, 말씀하세요.”


돈 많은 형이 돈 빌려달라고 뜸 들이는 줄 알았다.


알고 지낸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뜸 들이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못 생겨도 시원시원하고 거칠 것 없는 상남자가 왜 이러실까.


“어제 내 여친 어땠어?”


“예쁘고 착하고 싹싹하던데요.“


차마 좋은 사람 같다는 말까진 나오지 않았다.

형과 어울려 보인다는 말도.

거짓말 잘 하지도 못하고, 하면 티 나는 스타일.


“그래?”


“네”


“나 얘 하고 결혼해도 되겠지?”


허허, 그걸 왜 나한테 물으심.

자기가 데리고 살 거면서 ㅎㅎㅎ


그러면서도 선뜻


“예”

라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어리고 예쁘고 착하고 싹싹한 데다,

직장까지 안정적인 곳에 다니는데 뭘 고민해요?

형 입장에선 봉 잡은 거 같은데.

무슨 빚이라도 있대요?“


라고 나와야 했는데, 선뜻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은 정작 못 하고,

되지도 않는 말로 뜸을 들이고 있는데,


오래 만난 사람끼리는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다더니,


“어, 나도 좋은데 고민이 좀 되어서.

결혼하는데 나한테 3천만 갚아 달라네.“


이거였구나.

뭔가 이상한 느낌.

부자연스러운 조화.


엄청 애매하네. 3천.

3억이면 고민 없이 bye 인데.


근데, 대부업체에서 300 이야기하듯이,

여자애들 선수들도 3천 부른다던데.


오죽하면 3천만 땡겨줘

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 아닌가.


참 이거.

밥 먹으러 괜히 나갔네.

이런 숙제를 같이 풀자고 던지다니 쩝


“고민이다 야”


고민이 되시겠지요.

예쁘고 어리고 다 좋은데,

빚이 있는데 형 입장에선 사실 3천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시원하게 갚아주고 아름답게 시작하던지,

아님 이게 첫 번째 요구고, 계속 요구 수위가 높아질 거니 여기서 접으셔야지요.


이미 생각은 빛의 속도로 scenario planning이 되며 case 별 대응 방안이 나왔지만,

대화에는 순서가 있는 법.


“어쩌다 그렇게 빚을 졌대요.

나이도 20대인데.“


“몰라, 자기 말로는 부모님이 아프셨다고 하는데,

들고 다니는 명품백이며 해외여행 다녀온 사진이나 그런 것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전에 스튜어디스 하는 여자애한테 한번 당해봐서 나도 조심스럽다 야. 얘는 착하고 예쁘고 다 좋은데 말야.“


‘원래 (몸매) 착하고 예쁘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수컷들의 본능 아니겠소. 생존에 유리한 우성의 잘 생기고 예쁜 애들 낳아보겠다고 우리도 고생 많습니다.


근데, 그러다 잘못 엮이면 골로 간다는 걸 형님도 겪어봐서 아니까 고민하면서 남한테 물어보기까지 하는 것 아니겠음 둥~‘


(승무원 직업 비하하는 것 아닙니다. 착하고 좋으며 근검 절약하는 승무원 분들 많다는 것 압니다. 그냥 사치하는 분이 우연히 승무원이었다는 설정, 허구로 봐주세요. 보통 승무원 분들이 아름다우시지 않습니까.)


사귀는 거면 그냥 일단 만나보라고 얘기하겠지만,

결혼 적령기가 지난 당시 30대 중후반 선배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었고, 보수적으로 말했다.


“만난 지 6개월 밖에 안 되었다면서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지켜보면 어때요.

평생 같이 30년 혹은 그 이상 같이 살 건데, 6개월 더 만나보고 결정하면 안 되나요? “


“그렇긴 한데, 이 친구가 자긴 어렸을 때부터 빨리 결혼하는 게 꿈이었다고. 오빠 같은 남자 놓치기 싫어서 빨리 결혼하고 싶다네. 헤~“


으이그, 어리고 예쁜 친구에게 홀딱 빠져서 답정너 (답 정해놓은 너) 상태이면서 그럼 뭘 묻나.


“그렇게 좋으면 그냥 저질러요 그냥 ㅎ”


“아니, 그건 아니고”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서 말인데, 너네 그룹사라며. 거기 계열사에 너 아는 사람 없어? 한번 알아봐 줘라.”


허이구, 내가 무슨 흥신소인가?

남의 뒷조사하게.


“결혼하면 섭섭하지 않게 선물 하나 제대로 할께.”


거기서 흔들렸다.

제길.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


실제로 이 형은 돈 많은 부잣집 아들답게 차를

자주 바꿨다.


한 번은 같이 골프 칠 때 내가 아반떼를 몰고 가니,


“야, 골프 치러 오면서 아반떼가 뭐냐 아반떼가

내 차 가져갈래?“


“뭔 소리예요. 형은 무슨 차 타려고요?

그리고 골프 내기하면 형이 맨날 지면서,

무슨 차 타령이에요. 골프만 잘하면 장땡이지.“


“그게 아니야 자식아.

무슨 차 타고 다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안 그래도 차 바꿀 때 되어서 그런 거니까 내 차 괜찮으면 가져가.“


당시 형은 최신형 그랜져를 타고 다녔다.

그랜져는 나이 먹으니 뽀대가 덜 나서 제네시스로 가야겠다며 나에게 던진 말이었다.


이 놈의 물욕 (물건 욕심)은 없다가도,

광고를 계속 보거나, 이렇게 실물이 내 손에 잡힐 듯 하면 갑자기 무섭게 요동칠 때가 있다.


그날 이후로 길가에 그 그랜져만 보였다.


안돼, 안돼 하다가,

얼마에 넘길지 물어만 볼까

해서 물어보았다.

물론 중고 시세도 확인하고 나서.


공짜로 주기엔 좀 그렇고 1500에 가져가.

헐 5만도 안 뛰고 연식도 얼마 안 되었는데,

중고 가격 반도 안 되게 넘긴다고?


이런 경우 무조건 사기다.


그런데, 이 형은 대학 때부터 같은 과에서 봐 온 형이고, 익히 부잣집 아들인 것도 알고 있었고, 같이 주식 투자 하면서 자산의 빙산의 일각만 보고도 놀란 적이 있었다.


나 같은 놈에게서 돈 천만 원 단위로 사기 쳐서 돈 벌 생각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나의 ‘아방이’를,


(아반떼의 별칭. 때로 조롱의 언어로도 쓰인다. 그 오빠 아방이 몰고 온 거 있지 ㅋㅋㅋㅋㅋㅋ 겁나 폼 나더라 ㅎㅎㅎ - 뭐 이딴 식으로 흐)


처분하면 지금 갖고 있는 현금으로도 충분했다.


신뢰할 수 있는 상대방과 남는 장사.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꿈의 그랜져를 20대에 손에 넣어 신나게 달렸다. 확실히 아방이 시절에 막 끼어들던 녀석들이 조금이나마 덜 끼어드는 게 느껴졌다.


호텔이나 골프장에 갈 때도 아방이를 몰고 가면, 일하시는 분들이,


“이 쪽으로 오시면 안되요. 저~ 쪽으로 가세요.”

라고 많이들 그러셨는데,

그랜져를 타고 가면,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사실 그랜져가 그런 급은 아닌데, 어린 놈이 나이에 맞지 않게 좋은 차 타고 다니니 부잣집 도련님인가 싶어 좀 더 대우해 주셨던 것 같다. 흙수저에서 신분 세탁하는 건가 쿠쿠


“한번 알아봐 주라.

회사 잘 다니는지, 혹시 이상한 애는 아닌지 정도만 알면 돼.“


자본주의와 친분에 고개 숙인 나.


‘죄는 아니니까’

전공자의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음 날 먼저 그녀가 그 계열사에 있다는 걸,

그룹 직원 검색에서 확인을 했다.

다행히 있었다. 사진이 뭔가 뽀샵인지 설정샷인지 모르겠지만, 동그란 눈과 계란형 얼굴을 보니 한 눈에 그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내 그룹 메신저를 통해,

그 계열사의 그룹 공채 동기 K에게 연락을 했다.


“K야, 잘 지내지?”


“어, 잘 지내지.

넌 잘 지내?

무슨 일이야?“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62



아래가 본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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