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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ug 16. 2023

친한 선배의 여자친구 (3)

내 사랑 강남 싸가지 번외 편 D-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61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엉, 너도 잘 지내지? 무슨 일이야?”


“혹시 S 라고 알아?”


“알지.”


“어떻게 알아?”


“야, 우리 회사 직원 몇 명이나 된다고.

너네 회사야 몇 천명이지만,

우린 2백 명 정도잖아. 대충 다 알아.

그리고 S 이쁘잖아 ㅋㅋㅋ.“


(역시 예쁜 여자 보는 눈은 어쩜 이렇게 짠 듯이 다들 한결 같을까? 그러니까 실제 얼굴도 본 적 없고,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들이 성형도 하고, 화장에 조명빨 얹어서 얼굴로 먹고 사는 거 겠지?)


“그렇구나.

뭐 좀 물어보려고.


그 친구 어때?

아니, 남자친구 있어?“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얼마 전까지 우리 회사 선배하고 사귀었어.

같이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랬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헤어졌다고 하더라고.“


“그래?”


“근데, 왜? 클럽에서 만났냐?”


“아니, 친한 선배가 여자친구라고 소개시켜 주더라고.”


“아~ 그랬구나.

그 친구 우리 회사에서만 3명 사귀었어.

짧게 만난 친구도 있고, 아까 말한 선배처럼 오래 만나서 해외여행 다니기도 하고.

원체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명품백도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아끼고 ㅋㅋㅋ


근데, 파견직이야.“


“파견직?”


그게 뭔데?


당시엔 나도 20대의 어린 나이로,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걸 잘 몰랐다. 오래 다니다 보니 우리 회사 정식 직원이 아닌데 파견 형태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보통 인력 파견 회사에서 고용해서 파견직으로 해당 회사에 보낸다.


파견직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원 검색에서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에 사실 같은

직원으로 알지, 대놓고 물어보거나 누가 얘기해 줘야 알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전표 치는 서무 여직원 분들 중에 파견직이 많다.


회사에 큰 범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면, 비정규직에는 premanent가 아닌, temporary base로 2년 계약직으로 뽑아서 정식 채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파견직처럼 아예 우리 회사에서 뽑는 것이 아니라, 인력 파견회사에서 고용을 해서, 우리 회사로 보내서 근무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마트나 백화점에도 파견직으로 나와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대기업에서 고용 risk를 줄이려고 이렇게 사람을 쓰기도 했다. 그땐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니 다들 같은 직원이라고만 생각했지. 무슨 계급처럼 그런 것이 나뉘어 있는지 몰랐다.


정규직에서도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올라가고 팀장 임원 이렇게 구분이 되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 여직원들을 보아도 정규직이 계약직을 무시하고, 계약직이 파견직을 무시하는 것이 보였다.


월급 받는 같은 직원들끼리 꼴값을 떨고 있네.

싶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계약직도 2년 계약 후 정직원 전환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계약 만료 후 내보내기 아까우면 다른 부서나 다른 계열사에서 다시 2년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견직은 계약 종료 후 계약직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계약직으로 시작하면, 계속 계약직으로 돈다는 말이 있다. 다른 회사에 정규직으로 지원해도, 최종 합격 후 연봉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기도 한다. 계약직에서 정규직 시켜줬으니 연봉 인상은 없거나 적게 해 준다는 웃기는 논리가 숨어 있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면,


정규직 - 아가씨

계약직 - 향단이

파견직 - 무수리


이러고들 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보통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에 성과급에 차이를 두거나, 계약직에게는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계약직에서 억척같이 일하고,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 정규직이 된 친구가 있었다.


하필 그때 성과급 외에, ps (profit sharing)으로 추가금을 준 적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라 정규직과 계약직 구분 없이 동일 금액을 지급했다. 그 정규직이 된 친구가, 왜 차등을 두지 않느냐고 게거품을 물었다.


월급도 성과급도 더 많이 받으니, 상대적으로 얼마 안 되는 비정기적인 ps 같은 건 같이 받아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를 이해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반대인 경우가 있어 씁쓸했다.




안타깝지만, 그녀는 파견직이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말은 맞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럴싸한 간판으로 내세운 대기업이라는

말은 사실 허울이었던 거다. 당연히 나이도 어리니 월급은 200 이하일 가능성이 높고, 잘해야 조금 넘을 거였다.


더군다나, 그 회사에서만 남자를 세명 사귀면서 해외 여행을 다니고 했으면, 그 전까지 하면 어린 나이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난 것이었을까.


명품백 같은 건 선물로도 받았을 거고, 받지 못하면 백화점에서 할부로 질렀겠지. 해외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남자와 다녀왔지만, 남자가 없을 땐 친구들과도 갔을 거고 간 김에 면세점에서 또 질렀을 거고.


그러니 카드로 돌려 막고, 어디서 빌리고 하다 보면 빚이 3천이었을 거고. 남자를 많이 만나 봤으니 처음 보는 남자인 나와 어리숙한 선배와 대화에서도 그렇게 능수능란했던 거구나.


순식간에 그림이 쫙 그려졌다.


시쳇말로 예쁘면 손 탄다더니,

어후 이걸 다 선배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사람도 얼마 안 되는 회사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만 만난 걸 보면, 소위 취집 (시집가려고 취직한 케이스) 하려고 하는 것이 거의 분명한데.


성실하게 자기 역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인터넷 쇼핑하고 향수를 뿌리거나 화장하고 있는 친구들도 본 적이 있어서 더 불안했다. 아니, 아예 자리에 붙어 있지 않고 화장실에서 거의 살며 사내 까페에 갈 때마다 수다를 떨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면 안 되는데.


아닌가?

내가 친한 선배라고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한 건가?


파견직이고 뭐고 사람만 좋으면 되잖아.

월급 적어도 어차피 형이 돈 많으니까 맞벌이 할 필요도 없고.

남자를 많이 만나건 어쨌건 결혼한 것도 아니고, 돌싱도 아니잖아. 동거도 많이 하는 세상인데. 동거는 좀 그런가? 그럼 같이 매일 같이 보고 붙어 살고, 신혼여행 가듯 해외고 국내고 같이 다니는 건 다른 건가?


대학 때 한 친구는 노래방 도우미와 결혼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성과급을 많이 받아서 반 미쳤는지, 친구들과 저녁 먹으면서 술을 마시고 간이 부었는지, 아님 둘다였는지 곱게 집에 들어가면 될 것을 노래방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도 이제 부랄 찬 놈들끼리만 그만 놀고, 아가씨 좀 불러볼까?“


평소 같으면,


그냥 한 시간 노래 시원하게 부르면서 맥주 마시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세요.


여자랑 노래 부르고 싶으면, 좋은 여자 만나서 같이 코인 노래방이나 가서 알콩달콩 500원 넣고 노래 몇 곡 부르던지.


라고 했을 건데,


돈 있으면 딴짓하고, 거기다 술까지 마시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듯이 선뜻 그러자고 해버렸다.


회사에서 회식하고 접대하면서 그렇게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젠 내 돈으로 그딴 짓을 했던 거다. 이래서 경험이 무섭다.


하지만, 엄청 예쁜 친구들이 왔을 때, 한창 건강하고 젊은 사내놈들의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특히, 한 친구가 정말 예뻤다.

저렇게 순하게 생겨서 이런 데서 일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화장이 떡이 되어 가부키 화장을 한 센 언니를 상상했는데 신기할 정도였다.


내 친구는 그 친구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다.

내가 파트너가 되면 거의 절교할 분위기였다.


그 친구와 파트너가 된 내 친구는 거의 하늘을 얻은 표정이었다. 그게 뭐라고, 예쁜 노래방 도우미와 파트너 된 게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내 친구는 무척 진지했고, 거의 소개팅 분위기였다. 그 친구도 맞춰주는 건지, 내 친구가 맘에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 사이는 무척 좋아 보였다.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며 손 잡고 있는 뒷모습은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 꼴불견 아저씨가 화장한 아가씨와 껴안고 있는 볼쌍스러운 모습 하곤 달랐다.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에 있더니, 한 시간이 지나서 가자고 해도, 친구는 전혀 집에 갈 기색이 아니었다.


속으로,

이 미친 놈아, 그러다 작업 당하는거야. 정신 차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가장 행복한 모습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한 시간 더 놀았다. 그러고도 집에 갈 기색이 없어서 난 가겠다고 하니,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잘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사귀었다.

이 에피소드도 나중에 다른 외전으로 자세히 한번 다뤄야겠다. 글 쓸 소재가 많아서 좋다.


결국 내 친구는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친구들 중 가장 잘 살고 있다.

아들 딸 낳고 금슬도 참 좋다.


학교 선생님과 결혼한 다른 친구는 자녀도 없고, 이혼했다.


물론, 좋은 직업, 맞는 성격, 경제적인 부분 등 다 갖춰지면 best 겠지만, 내 친구 case를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같이 맞춰서 잘 사는 것 같다.


직업이고 돈이고 다 좋은데, 결국 본질은 남녀가 같이 살면서 밥 먹고 같이 자고 애 낳으면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성격,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의사 남편, 검사 남편 두고 불행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겹쳐졌다.


그렇게 나는, 옛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긍정 희망 회로까지 마구 돌리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곧이 곧대로 다 얘기하자니 이 형님 상처 받을 것 같고, 그래서 평생 장가 못 가면 어떡해?


얘기 안 하자니 뭔가 찝찝하고.


좋은 직업 가진 사람끼리 만나도 싸우고 헤어지기도 한다는데, 내 친구처럼 되려 알콩달콩 더 잘 사는 것 아니야?


내가 같이 살 여자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나?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563



아래가 본 편 1화부터 보실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ingangnam


(대문 사진 출처 : 스포츠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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