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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Aug 21. 2023

굿바이 삼백집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227


일전에 한번 글을 쓴 것처럼, 난 콩나물 해장국을 좋아한다.


soul food 라고 할 정도.


몇 번 쓴 것처럼,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첫 번째 음식은 거의 콩나물 해장국이다. 그리고 베지밀을 하나 때린 후 사우나로 가서 양치하고 한숨 잔다.


이런 걸 루틴이라고 하나.


어떤 사람은 콩나물 해장국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한다. 콩나물 대가리만 들어 있어서 실제 영양가도 생각보다 적다고.


취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콩나물 해장국의 진정한 묘미를 알지 못해서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해외에서 개고생 하고 시달리며 느끼한 음식을 먹다가, 그나마 현지 한식집이나 기내식으로 마음을 달래지만,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그저 밥과 국에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꼭 컵라면을 챙겨가게 된다.

요즘은 비행기에서 컵라면을 주는 경우도 있어 잘 먹는다. 평상시 한국에선 컵라면을 거의 먹지 않는데, 해외 출장 거서 일에, 느끼한 음식에 시달리고 나면 호텔에서 boiling water 받아다가 끓여 먹으면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비행기에서도 누구는 와인 한잔 마시면 느끼함이 싹 가신다고 하는데, 난 컵라면 국물을 마셔야 그렇다.


저녁에 늦게까지 술 퍼마시고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꼬마 단무지와 참치캔과 함께 하는 정도로 맛있다.


당연히 컵라면은 콩나물 해장국에 비할 바가 못된다. 패스트 푸드와 정성이 담긴 육수를 끓여서 뚝배기에 담아 오는 음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에겐 컵라면이 콩나물 해장국의 대용이고, 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choice는 ‘콩 해’ 다.


느끼함도 없애주고, 술을 마신 다음 숙취 해소로 먹는 콩나물 해장국은, 우습게도 술 마실 때도 그만이다.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잔. 아니면 찰떡 궁합인 모주와 마시면 기가 막히다. 아쉬우면 보통 같이 파는 수육을 먹는다. 그래서, 콩나물 해장국을 술꾼들, 주당의 음식이라고도 한다. 술 마실 때도 좋고, 술 깰 때도 좋으니 말이다.


해장술도 ‘콩 해’와 함께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알 수 없다.


거기다 콩나물 해장국은 저렴한 서민 음식이다. 8500원. 요즘 웬만한 음식은 만원에 육박하거나 넘는다. 내가 좋아하는 갈비탕도 1.5 만원 정도한다.


사람들과 고기를 시켜서 같이 먹기도 좋지만, 혼자 먹어야 할 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부담 없이.


그렇게 여러모로 자주 가던, 종각역 삼백집이 이제 영업을 그만한다고 한다.


꽤 많은 추억이 있는 집이었는데 안타깝다. 얼마 전에도 사장님 콩나물국밥을 먹고, 근처 오픈된 맥줏집에서 한잔 하기도 했는데 아쉽다.


영업 말투의 남자 사장님과 딱 국밥집 주인같은 여자 사장님에게 진짜 그만하냐고 물으니 어두운 표정으로 맞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콩나물 국밥집은 육수가 생명이라 계속 끓여야 하는데 가스비가 엄청나게 올랐으니 원가 부담이 컸을 거다.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웠을 것이, 보통 콩나물 국밥이 만원이 넘으면 사람들이 잘 사 먹으려 하지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태풍 등으로 채소값도 올라서, 재료비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며 물가도 올랐으니 버티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임대료 인상 요구도 있었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 비용까지도.


왜 그만두세요.


묻고 싶었지만, 별로 기분 좋은 질문이 아닐 것 같아서,


그동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건강하세요.


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삼백집 같은 전통의 맛집도 이렇게 접어서 그런지, 요즘 폐업하는 도심지 식당들이 많다.


앞서 말한, 물가 인상도 이유지만,

재택근무와 거점 오피스 근무도 늘고, 음식 배달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서 굳이 임대료 비싼 도심지 1층에 식당을 차릴 필요가 없어졌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과 MZ 세대의 trend에 따라 회식도 많이 줄었다. 점심 땐 줄 서서 밥을 먹지만,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가거나 회식을 하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더욱이, 지금 본격화되진 않았지만 어려운 기업들이 많다. 산업 일선에서 일하고, 외부 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망하는 곳이 식당만 아니라, 기업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무급 순환 휴직을 하는 회사도 생각보다 많고, 구조조정 계획을 짜고 있는 회사도 많다. 그것은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도심지 오피스에서 밥 먹을 사람이 더 줄어들 거고 더 많은 식당들이 폐업할 것 같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에 AI로 사무직들이 상당 부분 대체되면 어떻게 될까? 최소화된 사무직들이 AI 로봇 요리사가 밀 키트로 조리한 음식을 먹게 되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없고, AI 사무직과 AI 요리사들이 밥 하고 먹으면 더 웃길 것 같다.


추억이 깃들어 있는, 정든 곳과의 이별은 슬프다.

하지만, 왠지 앞으로 많은 이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슬픈 예감이 든다.


주말엔 집 근처 콩나물 해장국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이 곳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망하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쭉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해장국 먹으로 양평 가는 길에, ‘동동 국수집’ 까지 가는 건 너무 머니까.



동동국수집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경강로 908 팔당화로구이

https://naver.me/5UjcoS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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