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o estas? 2-4. 퇴사와 이직,이혼과 재혼

Chapter 2-4. 퇴사와 이직, 이혼과 재혼

by 이상

복귀해서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한국에서 쓰시던 물건들을 소소하게 하나씩 드리고 (주로 한국 담배)

현지 친구들에게는 좋아하는 한국 물품들을 나누어 주었다 (신라면 등)


그러다 보니 20대 젊은 사원 친구가 자리에 없었다.


“이 친구 어디 갔나요?“


“퇴사했어요.

여자 친구하고 결혼해야 하는데 너무 떨어져 있어서 헤어져야 해서 안 되겠다나 뭐래나.“


이 과장님의 짧은 답변이었는데, 나에겐 조금 충격이었다.


취업난을 이겨내고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 해외 수당 받으면서 경험 쌓고 해외 업무 배우라고 회사에서 특별히 대우해줬는데 복귀도 하기 전에 퇴사라니.


예전과는 너무도 다른 변화가 느껴졌다. 내 선배 어르신들은 어떻게든 해외 나가서 해외 수당 받으며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을 때 복귀하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목표인 분이 많았다.


IMF 때 구조조정 때 울면서 회사를 억지로 떠나는 영상이 나올 정도로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한 때도 있었다. 지금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조의 외침이 남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는 지금 내 후배들은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한 것과 다르다면 미련 없이 떠나고 자신이 원하는 곳을 찾아간다.


어차피 월급만 모아서는 너무 올라 버린 집도 사기 힘든 것은 물론, 부자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엔 이직을 자주 하면 적응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철새같이 생각해서 이직 경력을 감추기도 하는데, 요즘은 능력을 키워서 이직해서 연봉과 대우를 올리지 못하면 고인 물 바보가 되는 느낌도 있다.


그만큼 평생직장의 개념은 희박해졌고, 집은 어차피 못 사니 포기하고 월세를 살던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를 살던 어느 정도 일해서 벌고 쓰고 쉬고, 돈 떨어지면 또 일하고 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경조사는 물론이거니와, 집들이, 돌잔치까지 초대하고, 늦게까지 회식하고 집으로 가서 한잔 더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아예 저녁 회식 자체를 안 하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친구가 막내 역할하며 여러모로 도와주고 그랬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더 힘들어지겠네 싶었다.


‘아이고, 이러다 요즘 경로당에 환갑 넘은 할아버지가 막내라는데, 우리 회사도 다들 아저씨들만 남아서 막내가 40대 되는 거 아니야 이거‘


베이비 붐 세대들은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일단 사무실로 나오고, 단체로 식당에 가서 한 가지 메뉴로 통일해서 빨리 먹기 전쟁을 한다.


90년대생 Z 세대는 재택근무를 선호하고 아예 근로계약조건에 써달라고 하며, 먹고 싶은 것 따로 먹으면서 편하게 혼밥 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비롯 프리랜서들이 많아지고 있는 사회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회사 생활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차이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 나로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일은 누가 하고 소는 누가 키우나.

AI 하고 로봇이 다하나.




해외 사업을 한다고 해도 결국 사무직이 하는 일은 서류 관리다.


서류 만들고 보내고 접수하고 대응하고 등록하고.

나에게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말과 크게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청색 작업복을 입고 있느냐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느냐 차이 같다.

(블루 칼라, 화이트 칼라 - blue v white collar)


공장 일과 관련해서 보험이나 보증 서류를 챙기는 일을 퇴사한 젊은 친구가 했었는데 이제 나에게 하라고 한다.


유지, 연장, 제출, 시스템 등록 등 번거로운데 놓치면 안 되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알람 (alert) 기능이 시스템에 있긴 한데, 워낙 그런 서류들이 많아서 깜빡깜빡한다.


더군다나, 나도 실수를 한 적이 있지만 우리 쪽 본사 담당 부서나 현지 파트너가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잘 챙겨야 하고 틀린 것이 있으면 얘기도 하고 조정도 해야 했다.


“C 과장님, 바쁘시죠?”


지사장님은 지난번 강아지 사건 이후로 나에게 뭔가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필요할 때 연락되고 도움 주는 이웃사촌이라 했던가.


“괜찮습니다. ㄴ 사가 이번에도 서류를 잘못 보냈더라고요. 계속 실수가 반복되어서 이참에 한번 찾아가서 단도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거기 좀 어수선한 것 같더라고요.

잘 다녀오세요.“


과연 ㄴ사에 방문해보니 뭔가 어수선해 보였다. 내 카운터 파트는 ㄴ사 사장의 딸이었다. 뭔가 뾰로통한 표정.


“Como estas? Todo bien?"

잘 지냈어? 다 잘 되어가니?


볼 뽀뽀와 함께 인사를 하니 급 방긋하며 달려든다.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좋게 좋게 말하고 날짜 부분은 중요하니 다음부턴 절대 틀리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뭔가 말이 많다.

그래 떠들어라. 다 들어줄게. 근데 다음부터 실수만 절대 하지 말아라. 들어주는 것도 일이라서 다 듣고 실수한 부분을 다시 한번 지적하며 다음부터 똑같은 실수는 안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reiterate)


교정된 서류까지 받아서 일을 마치고 나가려는 찰나, ㄴ사의 사장을 만났다. 50대 후반의 점잖은 아저씨였다.


“Como pasado, Sr. C"

그동안 잘 지냈어? Mr. C


Sr. senor세뇨르의 약자로 영어로 Mr. 이다.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우리에게 익숙한 senorita 세뇨리따이다.


“덕분에 잘 지냈지.

근데 뭐 좋은 일 있니?“


딸내미는 표정이 안 좋은데, 이 아저씨는 밝다.


“어, 나 이번 주말에 장가 가쟈나.”


그래, 축하... 근데 딸도 있는데, 재혼스?


“어, 새 장가”


역시 열정의 나라 구만. 한국에선 한번도 못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좋은 걸 두번이나 하시네, 늙으막에.

60 다 되어가는데도 새 장가에 입이 귀에 걸려있다. 저러니 정신 팔려서 일은 뒷전. 관리도 안 하고 있으니 이런 실수들이 있었지.


그러면서 이번 주말에 오라고 한다.


‘invitación’ (인비따시옹)을 주면서.

영어로 invitation, 초청인데 이런 것들을 보면 영어나 스페인어나 비슷한 단어도 참 많다.


얼마나 fantástico fiesta를 하려고 하길래 궁금해서 가 보았다. 주말에 딱히 할 일도 없고.

(빤따스띠꼬 피에스타 - fantastic festival, 환상적인 축제 페스티벌)




50대 아주머니, 잘해야 40대 후반 분이 신부일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장의 딸과 얘기를 하고 있는 여성이 신부였다. 신부처럼 옷을 입고 있어서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딸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다 보니 정말 별 꼴을 다 보는구만. 인생 다양하다 정말 다양해.‘


아무리 열정의 나라라도 상도의는 있는지 딸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자와 재혼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고 말하고, 어머니도 그런 점이 화가 나서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헐, 전 남편 재혼하는데 전처가 왜 오나? 비슷한 나이 대 여성과 재혼하면 와서 새 출발을 축하해준다는 건가? 쿨하다 쿨해!‘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재혼 파티하는 것도 신기한데. 한국 같으면 가족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식사나 않을까 싶었다.


서른 살 정도 차이가 날건대, 와 한국에서 띠 동갑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농담으로 두 바퀴 (24살 차이) 차이를 말하기도 하던데,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 이 지구상에 있다니.


여러 나라 다니며 다양한 일을 겪어봐서 잘 놀라지

않는데 오랜만에 문화적 충격에 당황했다.


(어떤 나이 70 넘은 연예인 분이 30대 여성 분과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한국에 복귀한 후 들었다. 한국에도 이런 일이 있다니. 아드님도 연예인이시고 40 넘으셨다고 들었는데 신기하다.)


그날 밤 자려고 하는데 건물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물어보니 진도 5보다 낮은 지진이 도시 북서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 정도면 난리가 날 테지만 이곳에선 6 이상 되어서 건물이 상당히 흔들리는 정도가 되어야 대피도 하고 지진인가 보다 한다.


그렇다고 지진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6.5 지진 발생 당시 사무실에서 청소 일 해주시는 할머니가 울면서 나 죽는 줄 알았잖아 하고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난 그때도 대피해서 간 곳에서 와이파이 잡아서 일했다. 한국인의 불굴의 의지로. 달러 벌어들이는 수출 역군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