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91
최근에 중국 CCTV의 다큐 제국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책을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중화라는 크고 강하며 자원도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
중국산이라는 낙후의식.
최근 G2로 급부상.
정도와 삼국지를 비롯한 역사 이야기 위주로 이 나라를 이해하고 있었는데,
업무상 필요도 해서 본격적으로 중국을 공부하고,
포럼 등으로 중국에 갈 일도 생겨서 좀 더 관심이 갑니다.
제가 주재원으로 주로 있었던 남미나 유럽처럼 떨어진 곳이 아니라,
중국은 해외라는 의식이 좀 덜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황인종이고, 한자를 쓰고 유교 문화권이며 교류가 그렇게 많은데도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가요? ㅎㅎ
하긴, 중국인조차 중국을 모두 다녀보거나, 중국을 모두 알 수 없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태어나 출장이나 여행 정도 다녀본 사람이 중국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요.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로 그 과정을 즐기려 해 봅니다.
시진핑이 말한 양안통일은 필연이라는 말을 들으며,
하나의 중국 그리고 50개가 넘는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려는 중국의 본심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우리는 러시아가 아니야. (구) 소련의 영광을 다시 찾고 재현해야 해.
우리가 남이가. 그런데 넌 왜 자꾸 나토 쪽 서유럽 미국 쪽으로 붙으려고 해.
걔들 너 이용해 먹으려는 거야. 우리는 하나다. (근데, 넌 동생. 난 형)
보여준 위와 같은 역사의식과 소련 연방과 러시아 제국에 대한 향수가 보였던 것과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에는 최초로 중국의 통일을 주장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맹자라고 하더군요.
공자 왈. 맹자 왈이 여기서 나옵니다.
맹자님이 말씀 하시되,
천하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
라고 하셨다네요.
그것을 나타내는 문구가,
대일통 (大一统)
중국 고대사회에 있어 종법의 근간이 된 것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의 제도적 통일을 주장하는 사상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통일, 대통령 이런 단어가 익숙한데, 약간 다른 듯 하면서도 유사해서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맹자 첫 장 ‘양혜편’ 6장에는 아래와 같은 통일에 관한 언급이 나와 있다고 하네요.
전국시대 위나라 양혜왕이 맹자에게 “어떤 사람이 통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맹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요?
누가 고스란히 자기 땅을 상대방에게 내준다는 말입니까? 잘 먹고 잘 살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데 그 제후가 아무리 자리는 보전해 준다고 해도 누구 밑에 있어야 하는데 당연히 싫어하겠지요. 잔소리 듣고 눈치 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전쟁이 일어나서 죽여야 굴복시키고 땅을 차지할 수 있는데,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그런 건가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정말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그 많은 전쟁이 왜 일어났겠습니까?
운동선수 등이 곧잘 하는 말이 있지요. 붙어 봐야 안다고.
질 것 같아서 안 싸우는 것보다, 일단 한번 붙어 보거나 질 것 같아도 싸우다 죽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굴욕이란, 자존심의 스크래치는 그렇게 참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말도 있지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럼에도,
사람을 힘으로 지배하는 패도 정치를 반대하고, 덕으로 인을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라는 왕도 정치의 실현을 역설한 것이라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전국 시대에는 ‘힘이 없으면 죽는다.’ 라는 약육강식의 야만이 지배를 하다 보니, 부국 강병의 패도에만 급급하여 전쟁을 밥 먹듯이 일삼는 군주들이 많았겠지요. 잘 아시다시피 전쟁은 살육과 공포 그리고 증오와 앙금과 같은 상처를 남기지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야만의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덕으로 인과 의를 행하여 백성을 다스리기 시작하면, 오랜 전쟁과 부역 동원으로 지친 백성은 물이 흐르듯 그러한 자애로운 군주를 따르게 되고 그러면 통일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임금에게 몰린다는 맥락이라고 합니다.
역시 공부 많이 하신 현자다운 의견입니다.
이 대목에서 유비가 형주에서 조조에게 쫓겨갈 때, 많은 백성들이 패왕 조조를 피해 유비를 따라 나서고,
유비는 도망가면서도 빨리 도망 가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백성들을 내치지 못하고 같이 갔던 일화가 생각나네요.
장판파의 장비와 아두를 구한 조자룡의 일화를 남기긴 했지만, 결국 따라 잡히고 많은 피해가 있었지요.
중화민족의 통일은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경제적 요구에 원인이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황하가 천하 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지리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춘추시대 중국 영토에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국가가 존재 했었지요.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다 보니 물을 다스리는 통일된 치수 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에, 황하 유역의 국가들은 황하의 범람으로 인해 매해 반복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중국에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해를 입는 것을 보면 쉽게 예상이 되지요.
중국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전국 시대 제나라 왕이 제후들의 ‘회맹’을 소집해서, 황하 유역의 제후 제왕들이 치수 사업에 있어서는 국가 간의 경계 개념을 포기하고 서로 힘을 합쳐 황하를 다스리자고 했고, 이를 ‘규구지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면 황하의 범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만약 한 나라로 통일하여 통치한다면 황하를 다스리는 데 인력과 자원을 보다 더 효율적이고 일사불란하게 분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제후들의 마음 속에서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는 견해입니다.
이런 지리적 원인과 함께 옆에 있으면 서로 돕고 살기도 하지만, 싸우기도 하다 보니 전란으로 죽고 죽이는 혼란이 없으려면 안정된 통일 국가가 있어야 겠다는 염원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모두를 발 아래 두려는 권력욕도 제후들을 자극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위에 한번 서서 권력의 맛을 보면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이지요. 마치 더 큰 돈을 원하거나 더 넓은 집을 원하거나 더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지요.
시진핑은 이런 기본 욕망, 권력욕, 지리적 이유로 인한 DNA.
거기에 더해,
세계 1등 국가 아니, 그것을 넘어선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심 국가, 세계 중심 국가 즉, 중화 국가의 건설을 위해,
중국몽, 일대일로, 반도체 굴기 등을 역설하며 양안 통일을 하나의 단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독주 시대를 보며 부럽기도 했을 것이고, 도광양회 하며 나아가지 못했을 때도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또한, 아편 전쟁 등 서양 열강 등의 침공으로 굴욕의 역사가 있었던 것도 기억할 것입니다.
큰 나라는 강력한 지배자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약할 때는 가장 큰 먹잇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제 글 읽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멋진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