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2. 사고 (accidente) (2)
보험사 친구들은 아니나 다를까 면책 (책임을 면함. 즉, 보험금 없음)으로 몰고 갈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긴 몇천만 불 (몇백억 원)이 걸렸으니 당연히 그렇게 나오시겠지.
현지 책임자님은 자꾸 가서 만나고 자료를 주고 필요한 자료 없는지 물어보고 만들어주고 설명해달라고 했다.
처음엔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계속 그렇게 만나서 자료 주고 설명해주고 하다 보니 신뢰도 쌓이고 친분도 더 높아짐을 느꼈다.
왠지 만나지 않고 증빙과 청구서류만 보내면, 그 친구들이 일일이 찾아보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밥을 떠 먹여주는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필요한 것까지 말하면 바로바로 준비해주고 알아서 챙겨주니 진심 고마워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의견이 갈릴 때에도 차분히 들어주고, 합리적인 증거 (보험 약관 조항 등)을 보여주며 설득하니 본인도 이 보험금을 줘도 나중에 문제 생기지는 않겠구나 하며 안심하며 넘어가는 게 보였다.
후에 보험사 담당자가,
“너는 거짓말 안 하고 딱 증빙되는 자료만 가져와서 무리하게 요청하지 않으니 좋더라.
다른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자료 던져놓고 보험금 줄려면 주고 말려면 말아라는 식이라 실망했었는데 좀 다르더라.“
고 말했다.
‘나라고 꼭 그러고 싶어서만 그러겠냐.
현지 책임자님이나 나나 워낙 큰 사건이고, 큰돈이 걸려 있으니 이렇게 죽기 살기로 너한테 맞춰주며 매달리는 것 아니겠니. 열심히 하는 것 알아줘서 고맙다. 끝까지 잘 좀 부탁한다.‘
라고는 말하는 대신,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네가 하는 일 돕고 협조하라는 거니까 걱정 말고 주말이든 언제든 콜, 아미고”
"No hay problema"
No problem. 문제없어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남미에서 점점 적응해 가고 있나 ㅎㅎ
한 번은 현지 책임자 님도 뭔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괜히 불안한지 보험사 미팅에 배석을 했다.
내가 불을 뿜으며 우리 자료를 설명하고, 우리 좀 잘 봐달라,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사무실 들어가기 전에 차 한잔 합시다.”
라고 한다.
“화재사고 나고 걱정이 많았는데 직원들이 다들 죽어라 빨리 수습하려고 하고, 보험금도 이렇게 가면 당초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받게 생겨서 마음이 놓여요.
정말 고맙고 마지막까지 좀 수고해줘요.“
라고 하는데, 말수 적은 아저씨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디든 열심히 하다 보면 방법이 다 있죠. 걱정 마세요. 잘해보겠습니다.”
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후에 보험금을 실제로 수령받고 사업 정산서에서 플러스 효과가 예상보다 더 커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한 일로 손꼽히며 본사에 보고될 수 있는 부분까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복귀 인사를 했을 때, 고생했던 동료로서 수고하셨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하고 안기까지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퇴직하셨는데 잘 사시나 모르겠다.
사고 발생 당시에는 모두 놀라고, 긴장을 하고 난리가 났었는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일상은 또 그대로 굴러간다.
일을 하고 공장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공장을 바라보는데 지금은 셧 다운이 걸려서 보수 작업하는 사람들만 있는 상황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무척 평화스러워 보였다.
“뭐 하세요?”
이 과장님이었다.
"공장이 오늘따라 평화스러워 보여서요.“
“하하, 그래요? 아이고 저 골칫덩어리 공장
저기에 우리 밥줄이 걸려있으니 미워할 수도 없고,
마치 사이 안 좋을 때 마누라 같네요.
애 낳아주고 같이 살아준 건 고마운데 안 맞아서 다툴 때는 왜 그렇게 미운지.
이 험한 세상 정으로, 동지로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사는 거죠 다.“
“공장에서 마눌님으로, 철학자가 따로 없으시네요.”
“지난번 휴가 때도 같이 며칠 붙어 있으니까 또 싸우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한번씩 한바탕 해줘야 사는 맛이 나죠.
그러면서 서로 불만 있으면 말하고 해결하고 맞춰가며 사는거죠.
문제없는 사업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문제가 있으니까 수습하라고 우리가 여기 나와서 돈 벌고 있는 거고요. “
사고 난 공장.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운 분위기. 공장과 마눌님 그리고 인생. 해외에 나와 있으면 일 빼고는 신경 쓸 게 없고, 가족, 친구도 없다 보니 혼자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이 먹은 분들이 가끔씩 이렇게 해외 나와서 일하려고 하나‘
외벌이로 애 셋 키우시면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쉴 수가 없다고 하시던 그 부장님. 50대 남성의 최애 프로그램 ‘자연인’을 언급하며 해외에 나가서 조용히 좀 있고 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일이 없으니까 딴 짓거리하고 잡생각하는 거야.”
본사 임원 분이 딴짓 말고 바쁘게 일 열심히 하라고 강조할 때 하는 꼰대 멘트인데,
일이 바쁘니까 진짜 딴짓할 수도 없었고, 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직장 생활 30년 짬밥이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거기다 회사에서 삼시세끼 다 주고 가끔 회식하거나 업무 파트너들과 식사를 하다 보니, 돈 쓸 일이 없어서 한 달에 300 달러도 안 쓰는 달이 많았다.
이래서 아프리카에 10년 넘게 있었던 그 선배가 어린 나이에 서울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그랬나 보다.
그런데 여성들이 결혼 상대 남자로 경제력을 제일 많이 본다고 하던데 왜 그 선배는 아직도 장가를 못 갔지.
경제력을 제일 많이 보지만, 역시 성격과 외모도 보는 거겠지. 선배 앞에선 감히 하지 못할 말을 생각만 하고 말았다.
돈 없는 대학 때는 30만 원이 부족해서 월말에 용돈 받을 때 되어가면 통장에 3만 원도 없어서 불안했는데, 그땐 시간은 많고 하고 싶은 건 많아서 그랬었나.
월급에, 해외수당에 돈은 꽤 버는데 바빠서 쓸 시간이 없어서 30만 원도 안 쓰다니 인생의 아이러니다. 아니면 그게 인생일지도.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합의가 마무리된 협상도 재협의 가능성이 있어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다행히 다들 위기의식을 갖고 한데 모여 빠르게 수습해나가자 종결된 합의서도 서명 및 정산과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큰 클레임 건은 끝나고, 자잘한 건들과 관리 업무 해야 할 것들 그리고 보험금 수령할 업무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현지 친구들이 일 잘하고, 문제 있어도 잘 해결하고, 분쟁이 있어도 잘 타협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또 추가 계약을 체결하자고 해서 그 일까지 같이 매달려서 더 바쁘기도 했다.
‘이래서 대학 시절 식당 알바할 때 손님들이 많이 오면 가게 잘 되어서 사장은 신나는데, 나는 힘들었나.
손님 많아져서 장사 잘되고 그만큼 월급 더 줬으면 더 열심히 하고 싶었을 텐데.‘
그렇게 휴가도 미루다 다녀오고, 다녀와서는 또 일하고 follow up 하고 하나씩 마무리하다 보니 2년이 흐르고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