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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Dec 07. 2022

건축 현장 에피소드

no.1 막걸리와 타워크레인

지금 시각 새벽 1시 나는 유리창 너머 초승달의 달빛이 구름에 번져 깊어가는 만추의 저녁 하늘 속 전설의 고향에서 자주 나오던 장면인 잔월을 보며 타워 크레인 조종석에 앉아있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 쌀쌀한 늦가을의 날씨임에도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서 팬티까지 축축하며, 막걸리를 먹은 탓인지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와 신김치가 섞인 술냄새가 좁은 타워 크레인 조종석 공간 안을 꽉 채운 것 같다. 조금 전에 잠자다 말고 휴대폰 소리에 놀라서 내 전화를 받은 1호기 타워 기사에게 작동법을 물어서 power 스위치를 on으로 돌리자 '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3시간 전 19개의 아파트 중에서 내가 맡은 동의 옥탑층 콘크리트 타설을 '호파'(항아리 그릇 모양의 건설용 기계)라는 것을 이용하여 타워 2호기로 타설하고 있었다. 저녁 6시부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늦은 저녁시간까지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골조 공사를 완료해야 하는 중간 관리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관공서나 주공 아파트(현 LH) 건축 공사의 경우 중간 관리일이 정해져 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지체 상금이라는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이 내가 근무하는 현장의 골조 공사 완료라는 중간 관리일이기 때문에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완료해야 하는 것이다. 형틀 반장 1명, 콘크리트 타설 공 3명, 타워 2호기 기사 1명, 그리고 건축 담당 기사인 나 이렇게 6명이서 천안 쌍용동 주공 아파트 신축 현장의 역사적인 마지막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저녁 12시에 콘크리트 타설이 완료될 예정이어서 형틀 반장과 콘크리트 타설 반장이 레미콘 차량을 기다리는 사이에 함바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려 막걸리와 수육을 가지고 왔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막걸리를 두 사발 정도 들이키고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빨리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끝나고 따뜻한 숙소에서 샤워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행복한 상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4번 정도만 '호파'로 콘크리트를 타설 하면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는데 옥탑층의 거푸집이 콘크리트 측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작업공간을 밝혀주던 조명 역할의 1호기 타워 크레인이 바람의 영향으로 원래 있던 위치에서 90도 정도 돌아가 버렸다. 일단 부족한 레미콘을 추가로 출하 요청을 하고 형틀 반장은 숙소에 긴급으로 연락하여 자고 있던 목수들을 호출했다. 문제는 달빛만으로는 부족한 컴컴한 아파트 옥탑층을 1호기 타워의 작업 조명으로 환하게 비춰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시각 타워를 조정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1호기 타워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 중앙에 위치해 있어 아파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타워 크레인처럼 호이스트를 타고 아파트 11층까지 올라가서 타워 크레인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 이동하여 손쉽게 조종석으로 갈 수가 없었다. 지상에서 아파트 16층 높이에 이르는 조종석까지 오로지 수직 철제 사다리를 잡고 올라가야 했다. '헉 헉' 8층 정도 높이까지 올라와 가로, 세로 30CM 정도 되는 면적의 철망 계단참에서 잠시 멈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콘크리트 반장이 힘내라며 고함을 지르면서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온몸이 땀으로 흘러내리지만 얼굴은 차디 찬 가을바람으로 찬물로 세수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다시 한 참을 올라가는데 숨소리와 함께 나오는 트림은 아주 찐한 막걸리 냄새가 마늘냄새와 콜라보로 뿜어져 나온다. 


아파트 현장 타워크레인 작업 조명 점등 이미지


마침내 타워 크레인 조종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중앙 의자에 앉았다. 현장에서 보기만 했지 타워 크레인 내부로 들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의자에 앉으니 타워 크레인이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인다. 바람이 부는 데도 이렇게나 움직이는데 만약 물건을 운반할 때의 흔들림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대로 주저앉아 기절할 것이다. '웅'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좌측으로 회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호기 타워 기사에게 휴대폰을 연결한 상태로 오랜 시간 통화하여 타워 기사가 시키는 데로 조정하였다. 왼쪽의 레버를 좌측으로 꺾으니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지브가 움직였다. 무전기로 형틀 반장이 스톱이라고 외쳐서 작동을 중지하고 시동을 껐다. 잠시 동안 조종석 의자에 앉아서 가을 하늘의 달 빛과 별을 보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타워 크레인의 지브를 고정시키는 브레이크 장치가 있다. 그런데 강풍이 불 경우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강풍 주의보가 있는 날에는 브레이크 장치를 풀어놓아야 한다. 특히 와이어 프레싱만으로 버티고 있는 1호기 타워는 대부분 브레이크를 풀어놓아 오늘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새벽 3시쯤 거푸집 터진 곳을 마무리하고 다시 호파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혹시나 또 바람으로 타워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1호기 타워 조종석에 앉아서 새벽 4시 반까지 대기하였다. 어느 정도 바람이 잠잠해지고 2번만 더 호파로 타설 하면 작업이 끝날 것 같다는 무전을 받고는 다시 타워 크레인의 수직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왔다.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끝난 시각은 오전 5시 40분이었고, 밤새워 고생한 타워 기사와 작업자들과 함께 현장의 함바 식당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는데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 과장님에게 자초 지종을 이야기하고 숙소로 들어가 잠시 눈 좀 붙이고 오겠다고 했더니 고생했다며 얼른 들어가서 푹 쉬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지만 그때 순간은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거푸집이 터졌을 때 형틀 반장을 비롯하여 타워 기사, 콘크리트 타설 공은 어차피 너무 늦었으니 다음날 타설 하자고 하였지만, 나는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작업자들을 설득하였다. 중간 공사 관리일을 맞추지 못하여 회사에 손해가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믿어준 현장 소장님과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어렵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나중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천안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의 마지막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만약 막걸리의 술기운이 없었다면 보기에도 아찔한 높이의 타워 크레인에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졸리다며 찡찡대던 2호기 타워 기사의 무전기 소리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으며, 막걸리 냄새를 맡으며 타워 크레인의 수직 계단을 오르던 순간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때 같이 밤새워 고생했던 작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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