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편 - 3. 혼자 제주로
"이렇게 좋은 땅을 하루 만에 결정하고 구입하셨다고요? 정말 운이 좋네요."
내가 현장 답사를 하고 건축주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첫 이야기다. 디자이너와 함께 고객 내외분과 두 번째 미팅이 끝나고 다음 순서는 설계와 시공에 대한 계약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전에 직접 눈으로 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로 네이버 지도 거리 뷰에서 봤던 것처럼 펜션을 건축하기에 적합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부지에서 보이는 전망은 어떻게 펼쳐질까? 공사를 진행하기에 도로 여건이나 지반 사항은 괜찮을까? 등을 짚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컨설팅에서 설계와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할 건축 기술자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부지를 확인하고 펜션을 건축하는 여러 가지 조건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경우 그냥 토지를 매각하고 건축하지 마시라고 말릴 참이었다. 반대로 부지를 확인했는데 펜션을 짓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면 나에게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고객과의 두 번째 미팅이 끝나자마자 그날 저녁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하룻밤 묵을 숙소도 잡았다. 그렇게 다음날 홀로 현장 답사를 떠났다.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고객분에게 제주도 토지는 어떻게 구입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7년 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와이프 하고 제주도에 1박 2일로 여행을 갔었는데 대뜸 와이프가 "우리 은퇴하고 나중에 제주도에 살까?"라고 남편한테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제주도 온 김에 땅이나 한 번 보자고 제주시에 있는 부동산에 문의를 하였고 3군데 토지를 소개받았다. 애월 광령리, 한림, 그리고 구좌 송당리. 7년 전이면 제주도에 땅값이 크게 올라 정점에 있을 때다. 효리네 민박으로 애월읍의 토지 지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거대 중국 자본의 묻지 마 투자로 인하여 제주도 전체 땅값이 꼭짓점을 찍었다. 3군데 땅을 모두 둘러보고 다음날 다시 육지로 가기 전에 계약한 것이 바로 구좌읍 송당리 토지인 것이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좋은 토지를 살 수 있는지 고객분들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축 허가까지 받아져 있었고 오수 관로가 토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현재 송당리에 동화마을이라는 공원이 조성되어 송당 스타벅스 리저브 샵이 들어와 전국 최고의 매출을 찍고 있으며, 송당리 바로 옆에는 스누피 가든이 있다. 비자림과는 차로 10분 거리, 안돌오름 비밀의 숲을 비롯해 만장굴, 월정리 해수욕장, 김녕 해수욕장, 성산 일출봉도 15~20분 안에 모두 위치해 있다. 제주도 동쪽 펜션 건축 부지로서는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건축주 내외가 운이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새벽 7시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를 찾고 구좌읍 송당리 부지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월정리 해수욕장에 들려 바닷바람도 쐬고 해변에 위치한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제주도 동쪽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고객님 소유 부지에 도착하였다. 예전 풍림다방이라고 MZ세대들이 제주를 여행하면 꼭 들르는 카페 성지가 있는 마을이 바로 송당 마을이다. 펜션 신축 부지는 송당 마을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송당리 상동 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100년도 넘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팽나무 양 옆으로 양갈래 길을 지나면 밭담이라고 하는 현무암 돌담 골목길이 나오는데 한 300미터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펜션 건축 부지가 나온다. 부지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부지에서 보이는 뷰를 확인하기 위해서 내 키보다 높이 자란 잡풀과 잡목들을 헤치고 중앙 부분으로 들어가 보았다. 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리 뷰에서는 몰랐던 제주도 동쪽 먼바다 조망이 부지에 선 상태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것도 오름과 함께 제주도의 푸른 바다 조망이 아주 선명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부지의 뒤편은 2~3미터 정도 돌담이 둘러싸고 있어 제주를 느낄 수 있을뿐더러 바람까지 막아준다. 부지 둘레는 성토 작업을 하면서 돌담이 기가 막히게 쌓여 있다. 부지를 보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완벽한 펜션 건축 부지였던 것이다. 답사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미 건물의 위치와 평면 레이아웃이 그려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아침 햇살과 함께 먼바다 조망을 본다면?''툇마루에 걸터앉아 물이 흐르는 수공간에 발을 담그고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면?'이라는 건축 콘셉트와 건물 배치를 머릿속에 새기고 고객과의 세 번째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육지로 향했다.
제주와 나와의 인연은 24년인 현재에서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업 건설회사 근무당시 제주도 애월 하귀 아파트 신축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래서 부푼 가슴을 앉고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제주도에서의 건축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1개월 후 내가 느낀 제주도의 첫인상은 "여기는 사람 살 데가 못된다."였다. 툭하면 비 오고, 바람 불고, 저녁 8시만 넘으면 온 천지가 암흑으로 변하고, 습도가 높아서 빨래에 쉰내가 나고. 특히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때면 우산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루빨리 공사를 마치고 육지로 가야지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건축 일상이 4개월 정도 넘어갈 때였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제주도의 매력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자연, 에메랄드 빛의 바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들, 인심 좋은 제주 도민들, 제주시를 제외하면 교통체증 없는 도로, 골프를 좋아하는 골린이들의 천국, 등산과 산책을 위한 수많은 주변 오름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낚시,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 등. 그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심에서의 바쁜 일상에 물들어 있던 나에게 새로운 신세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제주는 나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그때 결심했다. "은퇴하기 전에 꼭 제주도 이주하여 남은 인생을 함께할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