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편 - 4. 계약 그리고 건축의 시작
"제주도에 펜션 건축한 적이 있나요?"
계약하기 일주일 전에 건축주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나는 제주도에 펜션을 건축한 적이 없다. 대신 대기업 건설회사 근무 당시 제주도 애월읍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신축 공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제주를 향한 나의 열정은 누구보다 크다고 자신하던 터였다. "제주도에 펜션을 건축한 적은 없지만 제 건축 시공 경력을 확인해 보시고 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답변드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제주도에 처음으로 펜션을 건축한다는 것에 오히려 기뻤다고 한다. 왜? "처음으로 제주도에 펜션을 지으니까 더 잘 지으려고 할 것이고 열정을 담을 것이다."라고 건축주 와이프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종로에 돗자리 깔아도 될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 것이다. 제주도 건축 컨설팅을 진행하기 이전에도 많은 제주도 예비 건축주 분들에게 시공 문의와 상담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마지막 질문이 "혹시 제주도에 직접 지은 펜션이나 주택이 있나요?"였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갈 사항이지만 제주도에 펜션이나 기타 주택들을 설계하고 건축한 유명 건축사나 시공자도 처음부터 제주도에 건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처럼 어쩌다 고객분과 인연을 맺어 제주에 건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 공사가 육지에서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주도 공사 실적이 있는 업체가 무조건 더 잘 지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제주도 업체에게 공사를 맡겼다가 부실시공에 공사비 먹튀에 공사 현장이 중단되고 급기야 소송과 분쟁으로 얼룩진 곳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누가 짓느냐이다. 따라서 제주도에 연고를 둔 업체와 실적이 있는 업체가 유리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정직하고 실력 있고 양심적인 업체와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더운 여름 제주도를 찾은 여행객이 시원한 바람이 부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물이 흐르는 수공간에 발을 담그고 오름과 바다 조망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현장 답사를 마치고 오면서 건축 설계와 건물 배치에 대한 영감이 그렇게 내 가슴과 머리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때부터 제주도를 향한 나의 건축 열정이 마치 20대에 첫 소개팅을 나가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고객과의 세 번째 만남은 제주도 답사 후 육지로 돌아오고 그 이튿날 바로 이루어졌다. 건축주에게는 부지에서 내가 직접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전달하였고, 내가 생각하는 건축 디자인 컨셉을 디자이너 하고 협의하였고 미리 준비한 이미지를 통해 자세히 설명을 드렸다. 이제 남은 것은 펜션 건축 설계와 시공에 대한 서로 간의 약속을 이행한다는 계약이 남아있었다.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비용에 대해 서로 협의해야 한다. 내가 계약한 건축 설계 비용은 고객이 알아본 A급 건축 설계 사무소의 50%선에서 제시하였고, 건축 시공에 대한 부분은 직영 건축 방식으로 제안드렸다. 여기서 건축 설계비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개인 단독주택의 경우(전원주택 등) 국토교통부에서 정한 건축 설계비는 총공사비의 4~8%이다. 예를 들어 건축 연면적 165m2(50평), 총 공사비 5억의 단독주택 설계비는 주택의 건축 수준에 따라서 2,000만 원~ 4,000만 원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도가 높고 디자인적인 수준이 뛰어난 건축 설계 사무소의 경우 50평~60평 기준 건축 설계비는 5~8천만 원이다. 더 높은 비용을 받는 건축 설계 사무소도 있다. 반대로 소위 허가방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건축 설계사무소의 경우 1천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을 받고 단독주택 건축 설계를 진행한다. 뭐 1천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을 받고 건축 설계를 진행하는 건축 설계사무소의 경우 Ctrl+c / Ctrl+v 수준이다. 즉 인테리어 스펙 도면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건축 설계가 될리는 만무하다. 물론 비싼 설계 비용을 받는 건축 사무소가 자신이 원하는 주택 디자인을 정확하게 제대로 설계를 하느냐는 것은 또 별개 문제다. 모든 사람이 얼굴, 성격과 선호하는 디자인, 추구하는 철학이 다르듯이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사 또한 추구하는 건축 철학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며, 자신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건축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건축 설계 사무소를 유명세와 이름만 보고 선택하지 말고 포트 폴리오를 확인하여 자신이 꿈꾸던 집을 설계해 줄 건축사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건축 설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여기서 비싼 건축 설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선택은 건축주의 몫이다.
설계가 완료되면 건축 시공을 해야 한다. 건축 연면적이 200m2(60평) 미만의 건축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건설 회사에 도급을 맡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직영 공사를 하는 것이다. 건축 연면적이 200m 2 이상일 경우는 종합 건설 면허가 있는 건설 회사에서 시공해야 한다. 대부분 알고 알겠지만 종합 건설회사에 맡기는 것이 건축 비용이 가장 높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종합 건설 회사의 경우 건축 공사비는 대부분 다음과 같이 산정한다. 재료비 + 노무비 + 경비 + 이윤 + 본사 관리비(종합 회사의 경우) 여기서 정확한 요율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회사 규모가 크고 조직을 운영하려면 건축 공사비에 본사 관리비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소규모 개인 주택 공사의 경우 건축 비용을 절약하려면 직영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건축을 모르는 건축주가 수십 수백 명의 건축 기능공들에게 일일이 작업을 지시하고 또 해당 업체에게 도급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을뿐더러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과물은 엉망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장단점을 보완하여 내가 건축주에게 제시한 것이 바로 건축주 직영 스타일의 공사 방식이다. 잡자재를 포함하여 모든 건축 비용은 건축주가 직접 지급하고 나는 전체 공사비의 일정 비율(12~15%)을 받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건축주를 대신하여 건축 시공의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진행하고 실제로 투입된 공사비에 서로가 협의한 일정한 요율을 대가로 지급받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 전에 미리 예정 공사비를 상세히 산출하여 건축 공사 견적 내역서를 제출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매달 급여 형식으로 얼마 정도를 지급받고 나머지 금액은 건축 공사 준공(사용승인) 완료 후에 받는 것으로 계약한다. 하자에 대해서는 건축법에서 정하는 기간으로 정하고, 별도로 인테리어 공사에 대해서 2년간 무상으로 진행하는 것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내가 지금껏 진행했던 공사 중에서 건축주가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것이 건축주가 모든 자재를 선택하고 비용을 직접 지급하는 직영공사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도급 공사에 비해 건축주는 총공사비의 15~20%를 절약할 수 있고 오히려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직영 건축을 제대로 진행해 줄 정직한 건축 기술자를 만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직영 건축을 진행할 현장 소장을 만났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소장이 이전에 건축한 건물을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건물 주인을 만나서 물어보면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직영 건축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도 사람인지라 도급 공사를 할 경우 이윤을 많이 남기고 싶다. 따라서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조금 더 싼 자재를 찾거나 인건비가 생각보다 많이 투입될 경우 이를 줄이기 위해서 마감 품질의 디테일이 떨어질 수 있다. 협력업체 선정도 마찬가지다. 마감 품질과 시공 능력보다 금액 비교 쪽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의 경우 투입된 공사비에 일정 비율을 지급받기 때문에 지정된 예산안에서 적정 수준의 업체 선정은 물론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능과 품질이 좋은 자재를 사용하게 된다. 물론 도급 공사든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의 공사든 나를 믿고 공사를 맡겨주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내가 수십 년 공사를 진행해 본 결과 후자 쪽의 계약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도급 공사에 비해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공사 중단의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건축주는 3~4개 업체에게 견적을 받아서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업체와 계약을 했다고 치자. 도급 공사의 경우 계약금 10%, 중도금(2회) 20~30%, 잔금 10~20%로 선지급하여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면 다행이나 만약 공사를 진행하다가 도급을 준 시공업체가 손해를 보거나 공사비를 다른 현장으로 돌려서 사용한 경우 공사가 중단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나 개인 사업자의 시공업체의 경우 자금 사정이 여유로운 곳은 내가 경험한 바로는 거의 없다. 이런 업체들이 공사를 도급받기 위해서 타 업체보다 낮은 가격까지 제시하여 공사를 진행하는데 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10번 공사에 몇 번이나 되겠는가? 공사를 진행하다가 툭하면 공사비 더 달라고 떼쓰고,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가 계약과 다르다고 건축주와 다투고, 준공이 다가오면 돈 더지급해야 한다고 하고, 사용 승인에 필요한 서류도 주지 않고,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법정소송으로 가는 상황까지 이른다. 내 주변에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의 경우 건축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건축주가 직접 지급하기 때문에 공사비를 받고 먹튀 하거나 도면에 명시된 스펙의 자재가 아니고 다른 자재로 눈속임하거나,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 소규모 주택 건축 공사의 경우 건축주와 시공자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건축 공사 방식이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건축주 분이 거주하는 수원 광교 신도시로 향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위에 언급한 건축 설계에 대한 비용과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계약을 진행하였다. 건축 설계는 미대 출신 디자이너와 내가 진행하고 외관에서 내부까지 모든 마감 자재 스펙북을 제공하기로 하였고, 건축 시공은 건축주 직영공사 방식으로 대가 요율을 정하고 일사천리로 건축주 분과 계약을 했다.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웠다. 계약이란 서로 간의 성실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약속인 것이다. 이제 12월 초 착공을 위해 건축 설계부터 진행해야 한다. 건축 인허가까지 남은 시간은 70일 정도. 당장 건축 설계를 진행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계약 사실을 알리고 그날 저녁 바로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디자이너도 직접 제주도 현장을 방문하여 건물 배치를 위한 뷰 포인트를 확인해야 한다. 건축주 분과 디자이너와 함께 현지답사 일정도 잡아야 한다. 건축 시공은 12월 초에 착공하여 늦어도 6월 안에 사용 승인을 완료하고 여행 성수기인 7월에 오픈할 수 있게 진행하는 것으로 계약하였다. 갈길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