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편- 9. 돌담도 두들겨 보자
"기존 돌담이 잘못 쌓아져 있습니다!"
착공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한 달안에 건축 도면을 완성하고 인허가를 받고 착공 신고까지 마쳐야 한다. 내가 구좌읍 송당리 숙소에 입주한 날짜가 정확하게 11월 7일이었다. 다음날부터 일전에 만났던 구좌읍 소재의 건축사와 인허가 계약을 진행하고 도면 작업 중인 디자이너와 매일 세부 디테일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도면 확정 전에 최종적으로 건물 배치를 현장에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디자이너의 의견이 있었다. 당시 부지에 잡풀과 잡목이 정글처럼 우거져 앞을 분가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부지를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외부에 보이는 풍경과 경계면에서의 거리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며칠 뒤에 장비 사장인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벌목기를 장착한 포크레인으로 부지에 잡초와 잡목을 모두 제거했다. 마치 몇 년 동안 머리를 안 깎은 장발을 매끈한 스포츠머리로 이발한 기분이었다. 며칠 뒤에 디자이너와 건축주가 다시 현장에 방문하였다. 건축 인허가를 담당할 건축사도 시간에 맞추어 현장에 방문하여 건축주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시선을 가리고 있던 무성한 수풀이 제거되자 더욱 선명한 제주도의 오션뷰 파노라마 전망이 펼쳐졌다. 건축사도 "구좌읍에 이런 토지가 있었나요?"라며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줄자로 대지 경계인 돌담에서 전체 길이와 인동거리를 체크하고 실제 지적도와 상이한 부분은 경계 측량 후에 조정하기로 하였다.
부지 정리 완료 후 한국국토정보공사(LX)에서 경계 측량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였다. 경계 측량을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 번째가 내 땅의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가 부지 안에 지어질 건물이 도면대로 정확한 위치에 앉히기 위해서이다. 토지를 구입하거나 건축 공사 착공 전에는 반드시 경계 측량을 실시해야 한다. 송당리 부지의 경우 택지를 개발하고 분할하여 매각한 것으로 건축주가 토지를 구입할 당시에 이미 돌담이 쌓아져 있었다. 당연히 돌담이 대지 경계에 잘 쌓아져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실시한 경계측량결과 옆 대지와의 경계에 쌓인 돌담이 잘못 쌓아져 있었다. 경계 측량을 하게 되면 대지의 경계점에 말뚝을 박거나 경계표시점을 설치한다. 옆 대지 경계 면에 경계점을 표시하니까 돌담이 우리 부지 안쪽으로 50~60cm 침범해 있는 것이다. 옆에 땅은 넓어지고 우리 땅은 작아진 것이다. 전체 길이가 25m 정도 되기 때문에 나중에 정확하게 면적을 계산해 보니까 15m2(4.5평)이었다. 건축주에게 바로 사실을 통보했다. 착공 전에 돌담 위치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돌담을 이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옆 토지주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토지를 6년 전에 구입하였다고 하니까 토지를 매각했던 업체와 연락이 될 지도 미지수였다. 옆 토지주도 자신의 땅이 줄어드는데 가만있을 리 없을 것 같았다. 당시 토지 가격은 평당 150만 원 정도였기 때문에 4.5평이면 땅 값은 약 670만 원 정도 된다. 토지 가격을 무시하고서라도 나는 무조건 이 땅을 되찾아야 했다. 왜냐하면 건물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 계획이었고, 작업 동선 확보와 조금이라도 더 넓은 안뜰을 조성해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처음 땅을 개발하여 토지를 매각한 주인과 연락이 되었다. 옆 토지주는 예상했던 대로 노발대발이었다. 청주에 사시는 분인데 당시 토지 매매를 담당했던 중개사 분을 통해 경계 측량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고 자조치종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건축주와 중개사의 어려운 설득 끝에 자신의 땅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돌담을 재설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제 남은 건 돌담 재설치 비용이었다.
나도 건축 경력이 30년이나 되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돌담도 아니고 농지를 전원주택 부지로 개발한 땅의 돌담이 일부러 작업하지 않는 이상 잘못 쌓일리는 없다. 저녁에 송당리 토지를 개발하여 매각했던 대표가 연락이 왔다. 다음날 아침 약속시간에 현장 부지로 향했다. 도착하니까 벌써 도착해서 토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공사한 토지의 돌담을 확인해 보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일찍 온 것 같았다. 제주 고씨 성을 가진 원 토지 개발 회사의 대표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복잡한 사연은 생략하겠다. 옆 토지주와의 얽히고설킨 사연이라고만 밝히겠다. 그러면서 자신은 돌담 이전 설치 비용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는 이 상태로 건축 공사를 할 수 없습니다. 돌담 설치 비용은 건축주가 부담하는 것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나중에 민사 소송으로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고 대표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잠시 화를 누르기 위해 씩씩대며 옆 토지와 돌담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마음대로 하라며 떠나려는 찰 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렇게 좋은 토지를 개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돌담이 잘 못 쌓여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돌담을 이전해야 건축 공사가 가능합니다. 이 상태로 가시면 집에 가서 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마음에 동요가 오는 듯했다. "그쪽도 사정이 있으니 내가 건축주 분에게 이야기해서 반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협의를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결과는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잘못 쌓인 돌담은 원래 경계면으로 이전 설치하게 되었고 건축주는 잃어버릴 뻔했던 4.5평의 땅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있다. "설마 이게 잘못 쌓아질 리가 있겠어?"라고 생각하다간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경계 측량을 신청하고 실시하는 데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이 아까워서 아직도 토지를 구입하거나 신축 공사를 진행할 때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토지를 구입한다면 잔금 지급 전에 반드시 경계 측량을 실시하여 내 땅의 경계를 확인해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