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편 - 8. 제주도 입성
"짬뽕에 계란프라이를 올려준다고?"
새벽 5시 반. 어제저녁 바리바리 싸둔 짐을 낑낑대며 차 트렁크에 책을 포개듯 차곡차곡 실었다. 중형 suv인 내 차에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과 조수석까지 짐으로 한가득이다. 제주도는 택배비가 육지에 비해서 비싸다. 추가요금이 적게는 3,000원에서 1만 원까지 붙는다. 그래서 숙소에 필요한 물품들을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박스채로 차에 실었다. 제주도의 도심을 벗어난 외곽에서는 자가용 없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제주시와 서귀포 시내를 제외하고 버스 시간은 30분 웨이팅이 기본이며, 버스 정류장은 도착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 많다. 또한 마트에 장을 보거나 식사를 하러 갈 때도 무조건 차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에 자신의 차를 가지고 가는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직접 몰지 않고 탁송하는 방법도 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비용도 아낄 겸 겸사겸사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완도항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예전에는 인천항에서 제주로 가는 배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 이후로 선사 운항 조건이 강화되면서 수익성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배를 타고 제주로 가는 방법은 목포, 여수, 진도, 완도 등의 연안 여객터미널을 이용하면 되는데 나는 배를 오래 타고 싶지 않아서 완도항을 선택했다. 완도항에서 제주까지는 배편으로 약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비용은 2등석 객실의자기준 성인 1인 35,000원 선이며 차량 선박은 15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다. 내 차량이 중형 suv인데 154,000원 정도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후 3시 완도항을 출발하는 '실버클라우드'라는 배를 예약했는데 차를 배에 싣기 위해서는 출항 1시간 30분 전까지 도착해야 한다. 따라서 오후 1시 30분까지 완도항 여객 터미널 선착장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에서 완도항까지 차량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출근 시간 교통체증을 감안하여 일찍 출발하였다.
5시간을 달려 오전 11시 30분쯤에 완도항에 도착했다. 어제 완도항 근처 점심 맛집을 검색해 보다가 평점이 좋은 중국집 하나를 발견했다. 혼밥 하기 가장 좋은 식당 중에 하나가 중국집 아닌가? 그래서 방문 후기를 살펴보는데 웬걸 짬뽕에 계란프라이가 올려져 있는 것이다. 간짜장에 계란프라이가 있는 것은 많이 먹어보았지만 짬뽕에 계란프라이가 올라간 것은 처음 본 것이다. 완도 우체국 앞 무료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부자관'이라는 중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안쪽에 위치하여 외부에서는 중국집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출입구에 낡은 나무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부자관'이라는 간판 이름이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로컬 맛집이기에 간판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장님 짬뽕 한 그릇 주세요!" 잠시 후 캬~ 금방 튀긴 계란프라이가 올라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이 나왔다. 맛도 평타이상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착하다. 요즘말로 가성비 짱 맛집이다. 이렇게 7,000원의 행복을 맛보고 완도항으로 향했다. 완도항 차량 선착장에 도착하니 내 앞에 2대의 차량이 줄을 서고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차량을 싣고 제주로 가는 것 중에 가장 불편한 점이 차를 배에 싣고 나서 연안 여객실 대합실에 대기하다가 배에 승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은 배가 출발하기 1시간 30분 전에 싣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공백이 생기고 승객의 신분증과 배표 검사를 따로 하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완도항을 출발했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물살을 가로질러 어느덧 제주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안내 방송에 따라서 차량에 탑승하여 대기하다가 제주도 땅을 밟았다. 집에서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제주도에 도착한 것이다. 이때가 11월 초 겨울이라 해가 일찍 넘어갔다. 구좌읍 송당리로 향하는 동안 사방에서 어둠이 몰려왔다.
제주도는 밤이 길고 아침이 빨리 온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해가 빨리지고 빨리 뜬다는 이야기다. 또한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식당과 카페들은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여행객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24시간 문을 연다는 편의점은 육지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제주도 도심이 아닌 외곽 지역의 편의점은 저녁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 곳이 대다수다. 도로에 가로등이 없는 곳도 많다. 저녁에 운전할 때 쌍라이트는 필수다. 가끔 늦은 저녁 혼자 서귀포시에서 구좌읍 송당리로 올 때가 있는데 암흑과 인기척이 없는 중산간 도로를 달릴 때면 등골이 싸늘할 때가 있다. 제주항에서 출발하여 구좌읍 송당리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였다. 2층 숙소로 올라가 물티슈로 바닥만 후다닥 청소를 하고 차에 있는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2층 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외부 계단을 통해서 숙소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짐을 날랐다. 초겨울이었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샤워할 정도였다. 가져온 짐을 대충 정리하고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불을 끄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닌다. 제주에서 새로운 건축 인생의 시작과 설렘,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 남은 일정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할 초조함, 어쨌든 제주도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 등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였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건축 일상 첫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