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쳐주는 남편
장 보러 가서 제철 부추를 발견했다.
"부추전 해 먹을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전을 너무 좋아하지만 프라이팬이랑 어찌나 안 친한지, 전은 누가 해줄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남편이 해줄 줄이야...
남편은 냉장고에 있는 애호박, 감자, 고추까지 다 오래된 것 같다며 야채 전까지 할 기세다.
'좋긴 한데 내 다이어트에 지장 있겠는데...'
그래도, 남편이 해줄 때는 군말 없이 먹어야 한다. 그가 해준걸 끼적댔다간 다음에 그 음식을 구경하기 힘들 뿐 아니라 삐돌이로 변신하여 셰프고 뭐고 때려치우고 라면이나 먹으라는 분노가 날아온다.
그리하여, 향긋하고 바삭한 야채 전과 부추전을 실컷 먹었다. 지인이 맛있다고 추천한 '느린 마을' 막걸리까지 마시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엄마, 엄마의 MBTI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대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큰딸의 이야기였다.
"엄마, 만약 약속이 취소됐어요. 그럼 남는 시간에 뭐 하실 거예요? 아마, 어차피 시간 남은 거 '일이나 하자.' 하실 거잖아요?!"
"ㅎㅎ 그건 그러네."
난 일주일 중 가장 여유 있는 주말 오후에도 끽해야 도서관 다녀오는 거 외에 집에 있으면 이것저것 하느라 빈둥빈둥을 못한다. 쉬자고 앉아서도 인스타그램 피드를 만들거나 듀오링고를 하거나 한다.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해서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다해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데, 시간 분배 + 능력부족의 문제로 언제나 할 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딱 끊고 놀자고 하는 게 남편이다.
"차 마시러 가자."
하거나, 산책 가자고 하면 할 일을 던져두고 일단 놀러(?) 나가게 된다.
다른 거에 있어선 능동적인데 쉬는 건 수동적인 나란 인간...
만약 노는 게 일이라면 계획을 세워서 열심히 놀지도 모른다.
"자기 덕에 나는 제대로 먹고, 제대로 쉬는 듯. 고마워!"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굉장히 뿌듯해한다.
"역시 자기는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
남편 덕에 몸도 마음도 살찐다.
잘 먹으니 좋은 점은 운동할 때 더 힘 있게 한다는 거다.
근육을 늘리고 체지방을 줄이자고 열심히 식단을 하고 있지만, 역시 잘 먹어야 힘이 나는 듯하다.
'남편 있을 때는 먹고, 없으면 조절하면 되지...'
주말부부라 가능한 계획인데, 주말부부가 끝나면 그땐 어떡하지?
나답지 않게 미래의 일을 걱정하다가 '에이, 글이나 쓰자.'로 금방 돌아온다.
그땐 그때의 방법이 있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