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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살 Nov 09. 2024

학교에서 돌아와 우는 너에게

딸 셋 맘입니다

워킹맘은 쉴 틈이 없다. 그나마 난 평일오후부터 밤까지 재택근무이고, 소소하나마 화상수업 시간표를 조정할 수 있기에 금요일은 여유롭게 잡는 편이다. 금요일 시간표를 보면서 월화수목을 견딜 달까? 


금요일 오전 영어 스터디를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왔다. 노트북을 켜고 회사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고 마침 달달한 커피가 당겨서 일어나는 순간, '띠띠띠띠'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이쁜이지?"

막내일 것 같지만, 가끔 둘째가 먼저 오기도 하기에 일단 물어본다.

'어? 왜 아무 소리 안 들리지?'

"엄마, 막내 이쁜이요." 혹은 "둘째 이쁜이요." 하고 대답이 안 들리면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오늘도 여지없다.


들어오는 길에 1층 우편함에서 신문을 꺼내와 침대에 올려놓는 막내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무슨 일인데?"

"친구들이 오늘 같이 놀기로 해 놓고 자기들끼리 속닥속닥하더니 저 먼저 가래요."

"왜?"

"인형 뽑기 하러 간다고 했는데, 저 말고 자기들끼리 가고 싶은가 봐요."

그러면서 친구들은 나쁘다고 울음이 터졌다.




난 아이들의 울음에 내가 먼저 흥분해 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충분히 공감하고 기다려주면 좋은데, 빨리 사건의 전말을 듣고 해결하고 다시 일상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조급증 때문이다. 하필 그날이 다가오는 중이라 한껏 예민해진 호르몬도 널을 뛰며 한몫하겠다고 나섰다.


"엄마, 친구한테 편지 쓸래요." 울면서도 아이는 나보다 차분했다. 

"그래, 편지를 써서 네 마음을 전해봐."

"그런데, 혹시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도 돼요?" 내 핸드폰 번호를 아이 친구들에게 노출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지만, 막내는 아직 핸드폰이 없어 답답해하니 허락을 했다.


아이가 보내는 문자 내용을 곁눈질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용은 별거 없었지만, 조바심 내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아이와 달리 저쪽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문자로 먼저 말을 걸고 마지막 인사도 우리 아이가 하는 것이 저쪽은 관계에 아무 미련도 없는 것 같아 약 올랐다. 

'젠장, 나 같으면 상대가 저렇게 나오면 당장 연락 끊어버릴 텐데... 침착하자. 성인의 관계와 초등학생들의 관계는 다르지...'


'띠띠띠띠' 또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다. 

"둘째 이쁜이야?"

'.................' 또 말이 없다. 느낌이 안 좋다.

"왜 대답이 없어?"

"싫어."

"싫어?" 

지금 기분이 많이 안 좋다는 것을 저렇게 표현한다. 


순간, 둘의 반응이 시너지를 일으켜 나는 이성을 잃는다.

방에 들어가 자기 침대로 가버린 둘째 녀석에게 기어코 가서 묻는다.

"오자마자 싫다는 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

"싫어."


지혜로운 엄마라면 이럴 때 그냥 놔둘 텐데, 난 막내의 일로 한껏 예민해진 터라 둘 다에게 화풀이를 한다. 

"왜들 이래? 엄마 일하는 거 뻔히 알면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으면 얘기를 해야 알 거 아냐?"

내 말은 조금 진정된 막내도, 감정이 올라오는 둘째에게도 전혀 먹히지 않고 허공에서 흩어져버린다.

   

 




'일하자, 일해.'

금요일 오후고 뭐고, 한껏 감정소모를 하고 나니 여유로운 시간도 다 지나가고 화상수업 시간이 되었다. 화상화면이 켜지고 화면 반대쪽의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화상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우리 애들이 친구문제로 힘든 게 나 때문인가? 핸드폰도 늦게 사 주고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다 온다고 하면 시간 지키라고 하고, 돈도 못 쓰게 하고 그래서 친구들이 같이 안 노나?'


난 소위 요즘 엄마들하고는 다르다. 아니, 요즘 엄마들이라고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한 것 같다. 사람은 어차피 다 다르니까. 그냥,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반 엄마들의 그룹에 들어가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거나 따로 만나서 차를 마시거나 하는 게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대신,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고 거기서 동아리에 들어갔다. 같은 활동을 하면서 친해지는 관계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만난 엄마들과는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친구와의 우정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여겼다. 


출처. Pinterest


첫 번째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큰아이가 2학년 되었을 때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데 같이 앉을 친구가 없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K는 조용하고 차분한 스타일이라 자신이랑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을 찾으면 좋을 것 같은데, 자꾸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하고 놀려고 하니 부대끼는 것 같아요."

"성향이 맞는 친구들이 누군가요?"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몇몇의 이름을 언급했다. 

한숨이 나왔다. 성향이 비슷하다고 다 친구가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끌리는 건 자기 자유인데...

집에 와서 아이와 얘기를 하며 느꼈다. 이 녀석은 친구라는 자체에 큰 흥미가 없었다. 그냥 반에서 눈에 띄는 애들이고 활달하니까 자기랑 친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네 마음과 시간을 줘야 해. 그동안 친구를 만들기 위해 그런 노력은 안 해봤지?"

아이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학기말에 어떤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우리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이었고, 둘이 성격이 잘 맞아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하교하고 바로 집으로 직행인 첫째와,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그 녀석과는 생활 패턴이 달라 자주 못 만나지만 시험 끝난 후나 방학 때 한 번씩 만나는 것을 보면 친하게 지낸다는 게 꼭 모든 것을 함께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내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한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는 작년에 반에서 왕따 비스름하게 당한(?) 경험이 있다. 녀석의 자유분방함은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 특유의 깐깐하고 야무짐 하고는 좀 다르다. 헤헤 잘 웃고 감정이 바로바로 얼굴에 드러나는 녀석은 또래들에겐 느리고 어눌해 보여서 놀림감이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씁쓸함이 올라온다. 다행히 6학년이 되어 작년 일에 대해 아시는 담임선생님께서 학기 초부터 반 아이들을 잘 잡아 주셔서 올해는 크게 마음고생 안 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어떨지 걱정되지만,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아이가 단단해지는 것에 더 집중한다. 그러니 이 녀석이 하교 후 기분이 안 좋으면 나의 예민버튼에 불이 들어올 수밖에...


   




아이들의 성향은 다르지만, 친구를 만들고 우정을 이어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첫째는 중1에, 둘째는 초6 후반기에 핸드폰을 사 주었는데 막내는 어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학교에서 만나는 것 외에 핸드폰으로 나누는 이야기도 중요해졌으니까...


일하는 내내 나 혼자 부글부글 했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을 때쯤 아이들을 이미 괜찮아져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감정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엄마의 과몰입과 예민함은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었는데...



출처. Pinterest

아이들이 어릴 땐 내가 우산도 씌워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했지만, 커갈수록 뒤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는 중이다. 


막내를 혼자 집에 가라고 하고 인형 뽑기를 하러 간 친구들은 다 외동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교 후에도 만나고 서로 집에도 놀러 가고 한다고... 그렇다고 막내보고 거기 끼어서 너도 그러라고 생각은 없었는데 막내의 맘을 확인하고 싶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인형 뽑기가 정말 하고 싶었어? 그럼 엄마나 언니들이랑도 갈 수 있는데, 같이 가줄까? 아님 그 친구들하고 가는 게 좋아?" 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엄마, 전 그 친구들하고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속상했어요." 

"네가 정 그렇다면, 걔네들이랑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까?"

"네, 이번 주말에 편지 써 볼래요."


아이가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야지...


세 딸의 엄마 된 지 이제 10년 된 초보엄마가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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