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콧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버스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내가 50% 할인받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니 교통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다니는 느낌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주로 우리 집 반경 2-3km 정도를 자전거로 다니며, 가끔 바퀴가 펑크 나는 것 외엔 교통비도 안 들고 운동도 되고 좋다고 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반경이 넓어지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그냥 운전을 해."
많이 들었던 얘기다. 나처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유형의 인간이 운전을 못 한다는 건 참으로 통탄할 일인 듯하나(왜 운전을 못하는지는 차차 밝히겠다) 나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산지 14년째.
그럼 세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돌아다녔냐고요? 혹시, 웨건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힘만 있으면 세 아이를 태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는 신통방통한 바퀴 달린 물건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태우기엔 너무 커버려서 주로 분리수거용으로 전락했지만, 볼 때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고마운 친구다.
사실, 나이 40 넘어서 차 없이 다니는 게 조금 민망할 때도 있다.
오늘도 도서관 미팅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다들 자기 차를 찾아서 가는데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차 어디다 뒀어요?"
"전 버스 타고 왔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긴 했지만 그런 순간들이면 왠지 상대방도 나도 조금 민망해지는 듯하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녔는데, 그것도 나이가 들수록 망설여진다. 아니 미안해진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하고 상대방도 괜찮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시간계산을 해야 하기에 머리를 굴려야 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건강에도 좋다. 다만 운전하는 것만큼 시간을 단축시킬 수는 없기에 그 시간에 뭐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지하철이라면 책을 읽고, 버스라면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화장도 고쳤었는데, 최근 읽은 책에서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고치지 마라'는 구절이 와닿아서 조금 교양 있게(?) 화장은 집에서만 하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가장 불편한 건 한껏 멋을 부리기 어렵다는 것.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오래 걷지 못하고,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껴입어야 하니 패션에 제약이 많다. 그럴 때면 낙낙하게 입고 차에서 내리는 우아한 여인들이 잠시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난 뚜벅이가 좋다.
오늘도 50% 할인되는 교통카드를 소중히 들고 올봄에 장만한 나이키를 신고 저멀리서 오는 버스를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