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도 하나의 재능이다.(라고 생각한다)
특별하게 잘하는 사람, 보통인 사람, 아주 못하는 사람.
이 셋 중 남편은 첫 번째, 나는 세 번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시댁 식구들은 모두 운전을 잘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큰 아주버님, 큰 형님, 둘째 아주버님, 둘째 형님, 막내인 남편까지.
반대로 우리 친정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나까지 대부분 걸어서 혹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남동생만 유일하게 차를 가지고 다닌다. 이마저도 올케말에 의하면 "형님, 저 사람은 운전해서 뭐 하나 부탁하면 얼마나 느린지 몰라요." '그래, 네가 차를 끌고 다니는 게 용하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복직할 때가 되었다. 직장은 운전해서 30-40분 걸리는 거리였고 8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려면 늦어도 7시 20분에 받아주는 데로 가야 하는데 우리 동네에는 그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이 없었다. 방법을 찾자니 내가 출근하면서 데리고 가서 8시 5분 전에 직장 옆에 맡기고 회사로 갔다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다닌다면야 대중교통도 가능하겠지만, 막 돌이 지난 꼬맹이를 데리고 출근하려면 운전을 하는 게 좋겠다고 (어거지로) 남편과 합의가 되었다.
급한 대로 중고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거기서 더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오토가 아닌 스틱(!)을 구입하는 것. 내 운전면허는 쓸데없이 1종 보통이었다. 300만 원 정도를 주고 흰색 아반떼를 구입했다. 경차를 구입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판단이었다.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스틱운전을 멋지게 하는 나를 상상해 보았으나, 현실은 마트 올라가는 언덕배기에서 시동을 꺼뜨려 오도 가도 못하니 할 수 없이 옆자리의 남편이 내 자리로 건너와 운전해서 올라가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복직할 때까지는 할 수 있다고 낮에는 시아버지가 한적한 곳에서 연수를 맡아 주셨고, 밤에는 퇴근하고 온 남편이 임진각까지 끌고 가 연수를 자처했으나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너무 곤혹스럽고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하필 복직과 더불어 분가 날짜가 다가와 이사준비며,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슬픔(첫째 때는 시설에 보내는 게 그렇게 서럽고 속상했다)까지 겹쳐 회사로의 복직은 더 우울하게 느껴졌다. 그전의 야무지고 빠릿빠릿하던 나 대신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꾀죄죄한 애엄마로 변한 사람의 복직을 회사에서도 썩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복직 초반에는 회사에서 눈치껏 처신을 해야 하건만 개인적인 상황에 매몰되어서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출근 이틀째, 운전할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입술은 부르트고 장염까지 걸려서 생기 없는 눈동자로 운전대를 잡았다. 시간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랑 함께 준비하는 아침시간은 대부분 생각대로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 그나마 지상에 주차를 해서 아이를 뒷좌석 카시트에 태우고 차를 앞으로 쭉 뺀 뒤 우회전하려는 찰나, 오른쪽에 있는 차를 살짝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차의 옆면에 붙어있던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때 차주가 멀리서 걸어오다가 그것을 보고 뛰어와 내 차를 세웠다. 중년의 여자분이었는데 뒷좌석의 아이와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시더니 보험 처리하자고 했다.
운전한 지 이틀 만에 보험처리, 그것도 나의 과실로. 그때까지 십 년 넘게 무사고였던 남편, 그리고 운전 실력자들인 시댁 식구들은 어이없어했다. 차를 앞으로 쭉 빼서 우회전도 제대로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될 리 없었다. 사고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회사에도 늦었다. 거기서 더 나빠질 건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