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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삼주 만에 끝났다 2

명함에 쓰여있던 이름은 '강감찬'

by 엄살

(글을 쓰기에 앞서... 일단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드립니다. 그 당시 운전한 시간이 고작 '삼일'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전 기록을 확인해 보니 '삼주'였습니다. 사실 확인이 미흡하여 지난 글의 제목을 부득이 수정합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해요!)






엊그제 남의 차를 살짝 건드려 보험처리를 했고,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의 질타를 받은 터였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뭐.' 나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운전이 싫고 무서웠지만 힘을 내야 했다.


오늘은 이사한 집에 퇴근시간 맞춰서 가스기사님이 온단다. 안 그래도 어수선하고 휑뎅그레한 집에 가스라도 빨리 설치해야 되겠다 싶어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픽업하고 서둘러 돌아오던 길이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다. 늦은 오후, 늦여름의 더위와 피곤함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왕복 4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기름을 넣으면서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1차선으로 들어가야 저 앞에서 직진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왼쪽 깜빡이를 켰다. 뒤에서 큰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서 못 들어가면 신호를 못 받는데... 용기를 내 1차선으로 진입했다.


갑자기 차 왼쪽으로 어떤 진동이 느껴지면서 다다다다 긁히는 것 같더니 차가 어느 방향인지 모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운전석 양쪽으로 흰 연기가 올라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판단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나 죽는 건가? 이게 사람이 죽는 순간일까? 손에 쥔 핸들도 발에 브레이크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게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저, 아줌마, 괜찮아요?"

누군가 차 문을 두드렸다.

"네?"

"일단 이것부터 작성해요."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멈춘 내 차 옆에 서 있는 트럭 기사였다.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종이와 펜을 내밀면서 무언가를 쓰란다.

내용인즉슨 '각서'였다.

이 사고에 대해 본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난 정말 멍한 상태였다.

그저 나와 우리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고, 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가 나면 일단, 경찰과 119를 불러야 한단다.

주변에 있던 누군가의 신고로 119가 왔다.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차라리 119를 타고 아이랑 병원으로 갈걸... 그땐 그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119 대원은 경찰을 부르겠냐고 물었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상황을 살피던 그 남자가 내가 거의 판단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 종용했다.

각서를 써달라고... 난 그 남자가 부르는 대로 각서를 썼다.

그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의 이름은 '강감찬'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더니 차를 빼겠다며 슬그머니 트럭을 빼서 휑하니 가 버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왜 저 차를 그냥 보냈냐며, 답답해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차를 빼서 이사 간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대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시댁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왜 그 사람을 그냥 보냈냐, 일단 사고가 났으면 신랑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지 왜 그랬냐라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며칠 전 사고로 이미 욕을 먹을 대로 먹어서 또 사고가 나서는 (심지어) 죽을 뻔했음에도 바로 전화를 못 하고 그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사고는 이러했다. 내가 1차선으로 들어갈 때 뒤에서 달려오던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걸 알 턱이 없는 내가 그냥 들어간 거고 그러면서 트럭과 충돌하면서 차 왼쪽이 주르륵 긁힌 뒤 그 충격으로 차가 빙글빙글 돌다가 중앙분리대에 부딪혀 멈춘 것이다. 차는 앞과 왼쪽이 다 찌그러져 있었다. 아이가 앉아있던 부분만 멀쩡했다. 트럭은 꽤 높았으며 우리 차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당시 인도에서 그 사고를 지켜본 몇몇 사람들은 모두 아반떼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했단다. 중앙분리대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 말처럼 난 그때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사고 소식에 집으로 오신 시어머니께서 우황청심환을 내미셨다. 많이 놀랬을 거라며 마시라고 하셨다. 시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듣고 화가 나셔서 울그락붉그락 하니 어머님이 화내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모시고 가셨다. 아이와 둘만 남은 난 대성통곡을 했고, 영문도 모르는 아이도 함께 울었다.

남편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당시 직장이 강남이라 소식을 듣고 바로 왔는데도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남편 역시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난 완전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보험사에서 우리 차를 보고 나서 폐차판정이 떨어졌다. 그런데, 폐차비용으로 돌려받는 금액이 우리가 차를 구입한 그 금액만큼이었다. 삼백만 원으로 가슴이 삼 주간 가슴이 시커멓게 멍들었다가 다시 돌려받은 기분이랄까.

사고 당시 차창이 열려있어 좌우로 연기가 올라가면서 바람에 의해 들어온 연기가 내 뺨과 손등에 닿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다음날 평상시처럼 출근했다. 동료들은 이런 상태로 왔냐며 놀랬지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고, 복직한 지 얼마 안돼어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 사고 얘기를 꺼내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를 데리고 한시간씩 걸려 버스를 타고 오가는 출퇴근 길은 매우 고생스러웠다. 그래도 운전을 해야한다는 공포가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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