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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나남 Jan 07. 2022

수영하는 아이, 책 읽는 엄마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대표 수영선수였다. 부산시 교육감배 수영선수권대회에서 1, 2학년 저학년부 대표로 나가 동메달을 땄다. 주 종목은 자유형이다. 6살 때부터 집 근처 수영장에 데리고 다닌 결과이다. 

 수영하게 된 계기는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밤 10시가 되면 온 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등 전체가 땀띠로 부풀어 오르고 항상 벌겠다. 간지러웠을 텐데 잘 참는 성격이라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려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시켰다. 아들도 좋아했다. 태권도, 유도, 검도, 수영, 골고루 다 한 것 같다. 가장 오래 한 것이 수영과 태권도이다. 일고여덟 살 때는 하루에 수영 2시간, 태권도 1시간을 했다. 그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수영하고 난 뒤로는 신기하게도 아기 때부터 극성이던 땀띠가 없어졌다. 감기도 1년 내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일과는 퇴근 후 아이를 수영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옆에 끼고 아이가 수영하는 동안 책을 읽는 것이 그 당시 나의 행복이었다.


 아이가 교육감배 수영대회를 준비할 때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 담당 수영 코치가 모질게 연습을 시킨 것 같다. 아이가 울면서 가기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수영을 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울면서 말하는데도 억지로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 말했다.

 나는 아이를 매일 데리고 다닌 기억만 있지, 그 날에 대한 기억은 없다. 매일 규칙적으로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안가면 내일은 더 가기 싫어질 거로 생각했다.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도 반복하면 지겨움을 느낀다. 그리고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할 때는 그것을 못 버티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악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스포츠와 외국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임계점을 넘기기가 힘든 것이다. 물이 100℃를 넘겨야 수증기가 된다. 99℃가 될 때까지는 액체이다. 이 액체가 100℃를 넘기는 순간 기체가 되는 것이다. 완전히 그 형태가 바뀐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 임계점만 넘기면 된다. 그러면 자유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임계점만 넘기면 음악도 스포츠도 외국어도 즐길 수 있다. 그 임계점을 넘기지 못하고 항상 바로 코앞에서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관한 내용이 KBS <생로병사의 비밀> 300회 특집에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존 레이티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근거로 운동과 뇌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운동하면 유쾌한 기분이 드는 진짜 이유는 운동해서 혈액을 뇌에 공급해주면 뇌가 최적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육이 발달하고 심장과 폐 기능이 개선되는 것은 운동 효과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운동이 신체 건강을 넘어 뇌 건강, 인간의 학습능력과 정신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뇌’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신체와 정신은 하나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운동과 뇌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1만 9천 명의 학생들을 전국에서 가장 건강한 청소년으로 만든 네이퍼빌의 혁명적인 체육 수업의 사례를 전하고 있다. 0교시 체육 수업이 학업성취능력 향상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되기도 했다. 

 그는《운동화 신은 뇌》에서 “정신은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신체는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신체와 정신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신체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은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하고 싶다. 신체가 먼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신력과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래서 항상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든가, 의지력이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내가 오십이 넘어서 새벽 수영하고 확실히 깨달은 것은 ‘신체’가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건강하고 체력이 키워지면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생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신체가 먼저다.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의지와 정신력이 강해진다.     

 나는 2018년 9월 1일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 H 교육청으로 부임한 첫날이다. 주차하면서부터 나의 놀람은 시작되었다. 주차장이 꽉 차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이 새벽 운동을 위해 체육관과 수영장을 다니고 있었다. 신세계를 본 느낌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새벽 운동은 처음이다. 아니 새벽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 도전 자체가 처음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출근 전에 건강을 위해 아침잠을 포기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사람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세상은 남도 가보지 않았을 거라고 착각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인데도.      

 새벽 수영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나의 건강에 대한 위기감에서 시작되었다. 그해 2월 말 계단에서 발을 접질려서 깁스하게 되었다. 그것도 감기가 2~3주가 지나도 낫지 않아, 영양제를 맞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접질린 것이다. 정말 부끄러웠다. 

 깁스하는 것 자체가 ‘나는 평소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 ‘자기 관리를 안 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깁스하면 보통 한 달 정도 지나면 푼다. 그런데 나는 깁스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깁스 한 자리 주변에 부스럼이 나 있었다. 그 부스럼이 가려워서 긁었는데 2차 감염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이라고 하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피부과와 정형외과에 번갈아 다녔다. 문제는 2차 감염된 자리가 아물지 않는 것이었다. 딱지는 앉는데 그 안에 살이 차오르지 않았다. 진물이 나고 아물지 않아서 항생제를 3개월이나 먹었다. 정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생제를 3개월을 먹고 나니, 몸도 붓고 살도 쪘다. 한 5kg 정도 찐 것 같다. 몸을 마음껏 못 움직이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결국에는 그 상처 부위를 도려내고 깁는 외과수술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4개월의 축적된 지방도 문제지만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고, 삔 다리는 계속해서 아렸다. 

 반성을 정말 많이 했다. 어릴 때 손들고 무릎 꿇고 반성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스스로 반성 각인을 시켰다. 내 몸을 너무 팽개쳐 놓았구나!! 라고.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교감을 하는 3년 동안 운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용기를 끌어모았다. 수영은 30대 초반 방학 때 잠깐 배운 것이 다였다. 20년 만에 수영장에 들어간 것이다. 습관을 바꾸고 싶으면 환경을 바꾸라고 한다. 발령받은 첫날 시작하지 않으면 결국 시도도 못 할 것 같아서 발령받은 첫날 새벽에 등록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하라는 말이 있다. 우선순위를 운동으로 바꾸었다. 이러다가는 내 몸이 못 견디겠다는 자각에서다. 원래 체력이 그리 좋지 못했다. 퇴근하면 항상 바로 뻗어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개인의 삶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력을 뛰어넘으려면 운동을 통해서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수영에서 그 길을 찾고자 했다. 살기 위한 ‘생존’ 수영이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은 수영하는 가족이 되었다. 개인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정체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영이 우리 가족의 소통 방식이 된 것이다.

 초등 수영선수였던 아들이 내가 수영한 지 6개월 뒤 합류했다. 믿기 힘들지만, 남편이 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 발차기부터이다. 새벽부터 수영하러 간다고 항상 언짢아하고 잔소리를 하던 남편이었다. 

 당뇨가 있으니 수영하라고 하면, 내가 이 나이에 뭘 배우냐고, 큰소리치던 사람이라 놀라웠다.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간에도 가족 간에도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 수영을 한 지 2년 만의 쾌거다. 

 운동은 신체를 단련하고 신체는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이 강해진다. 강한 것이 아름답다고도 한다. 나는 나이 들수록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아름다운 가족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 

 타고난 약한 체력도 새벽 수영으로 달라졌다. 퇴근 후 침대로 직행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둘 수 있게 되었고 나만의 여유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꽤 멋지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나보다 젊었을 때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 운동을 조금 일찍 시작한다면 훨씬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주변에 자랑하고 다닌다. 운동을 시작하라고. 체력이 키워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또 다른 기회가 나를 기다린다고. 몸이 건강해야 내 눈앞에 보이는 기회를 낚아챌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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