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의 넉두리

세 가지 삶을 끌고 가는 나의 하루

by 곰돌이 작가

곰돌이 ep.6


눈을 뜨면, 거실에 먼저 깨어 있는 아이가 나를 본다. "엄마, 이제 일어났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의 첫 인사가 어쩐지 사과처럼 느껴진다.

알람소리에 스스로 일어나 학교갈 채비를 마친 아이가 기특하고도 미안했다.

'오늘도 아이보다 늦게 일어났다'는 마음의 잔잔한 파문이, 내 하루 전체를 잠시 흔들어 놓는다.


세가지 삶, 하나의 사람


나는 세 가지 삶을 동시에 산다.

직장인, 엄마, 그리고 곰돌이를 그리는 그림쟁이

이 세가지는 번갈아가며 내게 책임을 묻는다.

누군가는 생계를, 누군가는 돌봄을, 누군가는 창작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취미'로 보이고, 집에서는 일이 우선이다 보니 그림은 늘 맨 뒤로 밀린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는, 내가 진짜 '작가'라는 믿음을 나 스스로에게조차 설득해야 하는 날이 있다.


핸디캡 1. 늦게 시작된 하루의 죄책감

아이보다 늦게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마로서의 점수를 잃는 기분이다.

누가 점수를 매기지도 않는데, 나는 늘 불합격 통보를 스스로에게 내린다.

이런 마음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면, 다른 역할들에도 이상하게 힘이 들어간다.

일터에서는 눈치 보며 일하고,그림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나는 나를 믿기보다 의심하고, 내가 해낸 것보다 못 해낸 걸 더 오래 들여다 본다.


핸디캡2. 틈이 있지만 비어있지 않다.

낮엔 시간이 난다. 수업이 하루 종일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지만 그 시간엔 늘 다른 일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

점심시간엔 아이 학원 일정을 확인하고, 커피 한잔 할 틈에도 다음주 수업할 재료를 검색한다.

퇴근길에 저녁반찬을 고민하고, 집에 도착하면 그 모든걸 실제로 해내야 한다.

틈은 있지만, 그틈은 한 숨 돌리는 시간이지, 창작의 시간이 아니다.

생각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몸과 머리는 이미 실생활에 묶여 있다.

곰돌이는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손은 자꾸 다른 일을 먼저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핸디캡3. 마음이 한쪽으로만 가지 않는다

직장인, 엄마, 그림쟁이 세개의 세계가 동시에 돌아가지만, 내가 완전히 한 곳에 몰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셋은 종종 한 몸 안에서 서로의 발을 밟는다.

마음이 분산된다는 건 곧, 마음이 고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곰돌이를 보며 "귀엽다'고 하지만, 나는 그 귀여움 속에 담긴 고단함을 안다. 그러나 굳이 설명하진 않는다. 설명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종류의 고군분투니까.


밤이면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이젤 앞에 앉아, 곰돌이에게 작은 말풍선을 달아준다.

안녕? 오늘도 늦었지만, 왔어

잘자 2024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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