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022년 아세안 의장국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2022년 1월 7일 1박 2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공식 방문했다.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이 군정 인정과 정당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2021년 2월 정변 이후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첫 번째 국가수반이 되었다.
1월 7일 훈센 총리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정 총사령관의 면담 직후 발표된 공동 보도자료에 따르면,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미얀마의 평화와 국가발전을 위한 소수민족무장단체들(EAOs, Ethnic Armed Organizations)과의 정전 협상에 아세안 특사가 동참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과 더불어 아세안 5대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아세안 특사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훈센 총리는 국가적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미얀마 군정 총사령관도 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방문과 더불어 모든 이해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약속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미얀마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효율성 제고를 위해 아세안 특사 및 아세안 사무총장 등 관계자들의 회의 소집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회담내용을 보면 국제사회가 주시했던 아웅산 수지 여사를 비롯한 반군부 지도자들과의 면담에 대한 요청은 물론 아세안 5개 합의사항 이행 방안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지 않았다. 훈센 총리 방문 직전인 1월 4일 미얀마 군정 대변인은 훈센 총리 방문 기간 재판 중인 아웅산 수지 여사와 면담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군정에 반대해 온 인권단체들은 훈센 총리가 수지 여사와의 면담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난했다.
로이터는 1월 8일 자 기사를 통해 아세안 미얀마 특사로 내정된 캄보디아 프락 스콘 Prak Sokhonn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 기간 아웅산 수지 여사 면담이 없었으며, 이번 방문은 지난해 4월 채택된 아세안 5개 합의사항 이행 방안의 일부일뿐 미얀마 군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프락 소콘 장관은 아세안 회의에 미얀마 군정 관계자들 초청의사를 밝혔다고 지적했다. 훈센 총리 방문에 동행한 캄보디아 외무장관은 ‘협상과 합의 진전을 반대하는 사람은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미얀마가 안정과 평화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라고 이번 순방의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방문이 미얀마 군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ABC News는 1월 8일 자 기사를 통해 Human Rights Watch의 필 로버트슨 Phil Robertson 아시아 담당 부국장의 ‘훈센총리의 미얀마 방문은 미얀마 국민에 대한 모욕이며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의 뺨을 때린 것’이라는 발언을 소개했다.
The Diplomat도 훈센 총리의 이번 미얀마 방문은 캄보디아의 친 군부적인 입장이 반영됐다고 지적하며, 훈센 총리는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기존 아세안 입장을 번복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훈센 총리가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이나 인권 이슈 보다 미얀마 군정의 아세안 회의참석을 우선시했다고 지적하며 반 군부 진영과 면담 의지 없이 미얀마 군부와의 비공개 회담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아세안 관계자들도 이러한 캄보디아의 행보에 대해 일제히 비난에 나섰다. 싱가포르 외교관이자 전 아세안 사무총장 옹 커 용 Ong Keng Yong은 1월 9일 교도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훈센 총리 순방의 목적은 오는 1월 18일~19일 간 개최되는 아세안 외교장관 회담에 미얀마 외무장관 초청 빌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위기 상황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의 실질적인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VOA(Voice of America)는 1월 13일 자 기사를 통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 관련 아세안 회원국들 간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2022년 아세안 첫 회의인 아세안 외무장관회담(AMM) 연기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캄보디아 키우 칸하리트 Khieu Kanharith정보부 장관은 1월 18일~19일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아세안 외교장관 회담은 무기한 연기됐으며 연기된 날짜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세안 외무장관들이 이동의 어려움을 회담 연기 사유로 들고 있지만, 일부 아세안 회원국들의 불만이 반영되어 잠정 보류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회담 연기로 인해 프락 소콘 외무장관의 아세안 미얀마 특사 공식 임명도 연기되었다.
The Diplomat는 1월 19일 자 기사를 통해 이번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이 아세안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 제기와 회원국들 간 분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얀마 군부라고 명시했다.
1월 17일 말레이시아 사이푸딘 압둘라 Saifuddin Abdullah 외무장관은,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 국가수반 자격이 아닌 아세안 의장국 자격으로 미얀마를 방문하는 것은 아세안 회원국 지도자들과 사전 논의가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훈센 총리의 방문은 아세안과 군정 간 중재 노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사이푸딘 장관은 아세안 외무장관들이 왓츠앱을 통해 훈센 총리의 방문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히며, 캄보디아가 의장국으로서 아세안 공식 회의에 미얀마 군정을 초청할 권한을 행사할 경우 이는 아세안 5개 합의사항 위배라고 지적했다.
훈센 총리는 1월 21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Joko Widodo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통해 말레이시아 사이푸딘 외무장관이 적절치 못한 발언은 아세안 의장국의 역할을 무시한 것이며, 인도네시아도 사이푸딘 장관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테쿠 파이자샤 Teuku Faizasyah 인도네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훈센 총리의 통화 요청에 따라 단순히 미얀마 방문 결과를 성명하기 위 한 통화회담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훈센 총리와 전화 회담 직후 본인 계정의 공식 트위터에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5개 합의사항 이행이 중요하다는 인도네시아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며, 5대 합의사항 이행에 큰 진전이 없다면 미얀마는 아세안 회의에 비정치 분야 대표만 참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RFA(Radio Free Asia)는 1월 21일 자 기사를 통해 전문가들은 아세안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을 놓고 분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은 훈센 총리의 행보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미얀마와 접경국인 태국, 베트남, 라오스는 훈센 총리의 행보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태국 돈 쁘라무드위나이 Don Pramudwinai 외무장관은 1월 14일 유엔 미얀마 특사 노엘린 헤이저 Noeleen Heyzer와 면담 이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태국은 아세안 5개 합의사항 진전을 위해 유엔과 아세안이 협력할 것이라고 밝히며, 아세안 의장으로서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미얀마 이슈 해결을 위한 행보를 지지를 한다고 밝혔다.
베트남도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을 성공적으로 판단하며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매우 중요한 행보라는 입장을 밝혔다. 캄보디아 총리실은 1월 20일 베트남 부이 탄 손 Bui Thanh Son 외무장관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며 미얀마 사태 해결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발표했다. 베트남도 아세안 의장국으로 캄보디아가 제안한 모든 이니셔티브와 업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1일 판캄 Phankham 라오스 총리도 팜 민 친 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와 회담을 통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라오스 로컬언론 Laotian Times는 1월 14일 자 기사를 통해 라오스 및 베트남 총리가 아세안 5대 합의사항 이행과 중재 역할을 한 훈센 총리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라오스 외무부 대변인은 1월 11일 훈센 총리가 미얀마 폭력 사태 종식과 미얀마 국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제공에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가 훈센 총리의 미얀마 이슈 관련 행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아세안 국가들 간 반목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022년 첫 아세안 회의에 대한 미얀마 군정 참석 여부에 이견이 표출됨에 따라 이미 한차례 연기된 적 있는 아세안 외무장관회담 개최가 어려워졌고, 7월 말로 예정된 제55차 아세안 외교장관 회담, 10월 말로 예정된 제40차, 제41차 아세안 정상회의 등 3대 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아세안 회원국들 간 반목이 커지는 가운데 미얀마 최대 투자국인 중국이 1월 10일 왕 웬빈 Wang Wenbin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미얀마에 대한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행보에 대해지지를 표명했다. 중국은 미얀마가 아세안 특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 것을 높이 평가하며, 군정의 5개 항 로드맵과 아세안 5개 항 합의사항 조율 노력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의 역할에 대해 중국이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 입장은 자국의 이익이 핵심이다. 중국은 미얀마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정권을 잡고 있는 군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일환으로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와 교감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얀마의 짜욱퓨 심해항 프로젝트 등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 재개를 열망하고 있으며, 외국 자본 이탈에 직면한 미얀마 군정도 철도, 항만, 전력사업 등 여러 인프라 프로젝트 재개를 바라고 있다. 중국과 미얀마 군정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훈센 총리가 미얀마의 국제적 고립을 어느 정도 타개해 나가기를 강하게 바라는 것이다.
일본, 1.85억 달러 차관 제공을 통해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 지지
하야시 요시마사 Yoshimasa Hayashi 일본 외무상도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에 대해 지지입장을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1월 11일 소콘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얀마 내 폭력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캄보디아의 적극적인 대처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훈센 총리의 방문이 소수민족과의 휴전과 인도주의적 지원에 기여했다고 언급하며 향후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프락 소콘 장관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의 입장 발표 하루 전인 1월 10일 캄보디아 로컬 Phnompenh Post는 훈센 총리가 오는 1월 31일 사사카와 요헤이 Yohei Sasakawa 일본 민족화합특사 겸 Nippon Foundation 이사장과 면담을 통해, 2022년 아세안 고문직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미카미 마사히로 Masahiro Mikami 주 캄보디아 일본대사는 훈센 총리에게 일본 정부의 지지 의사를 전하며 일본은 캄보디아가 아세안 의장국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강력히 지원할 계획임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틀 뒤인 1월 12일 일본 정부는 캄보디아에 1.85억 달러 차관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민첩한 대처는 아세안 의장국과의 관계 증진 목적뿐만 아니라 친중국 성향의 훈센 총리 행보가 중국 입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훈센 총리가 사사카와 요헤이 이사장에게 아세안 고문직을 제의한 배경 이면에는 일본이 미얀마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켜 나가겠다는 외교적 사전 포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자이샹카르 Jaishankar 인도 외무장관은 1월 10일 프락 소콘 캄보디아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미얀마 사태 등 공통 관심사를 해결하는 데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이샹카르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도-아세안 관계, 메콩-인도 협력 방안, 미얀마 상황에 대해 캄보디아 외무장관과 논의했으며,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와 긴밀히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인도 정부의 태도는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모디정부의 신동방 정책에 기반하고 있다. 인도 중국 간 긴장 관계가 갈수록 심해지고,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RCEP)에 참여하지 않은 만큼 인도는 아세안 국가들과 친선 교류 확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022년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미얀마 군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중에 아세안 의장국 총리가 미얀마 군정 지도자를 직접 만나면서 찬반양론이 펼쳐지고, 급기야 아세안의 분열 조짐까지 거론되기에 이르자 훈센 총리가 한걸음 물러섰다. 캄보디아 외교부는 1월 27일 미얀마에 대한 인도적 지원 논의를 위해 2월 16일~17일간 아세안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회담의 우선 과제는 아세안 5개 합의사항 이행 방안이며, 프락 소콘 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방문 의제에 대해서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훈센 총리에게 아세안 5개 합의 사항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결국 훈센 총리도 기존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연기되었던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훈센 총리는 1월 26일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과 영상회담을 하며 5개 합의사항 이행과 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방문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훈센 총리의 미얀마 관련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은 아세안 회원국들의 반발과 아세안 특사의 공식 인준 등 아세안 내부 절차 필요성으로 인해 일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지만, 미얀마 군정과의 교류는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The Diplomat이 훈센 총리 미얀마 방문의 가장 큰 수혜자가 미얀마 군부라고 평가했지만 군부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 훈센 총리이다. 일부 아세안 회원국들이 훈센 총리의 행보에 반대하고 있으나 이미 중국, 인도, 일본 등 강대국들이 지지 입장을 밝힘에 따라 훈센 총리의 행보는 탄력이 붙었다.
미얀마 군정도 아세안 의장국과 교류를 통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중국, 일본, 인도와의 교류를 더욱 확대시켜 나가고자 할 것이다. 미국의 미얀마 군정에 대한 향후 제재 조치 등이 물론 중요하지만 훈센 총리의 미얀마 이슈 관련 행보에 압박을 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훈센 총리와 미얀마 군정이 어떤 합의를 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