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쓰는 편지 - 2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를 읽고

by 퇴근하는 팥죽

선생님께서 저의 생각이 담겨있다며 추천해주셨던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한달 동안 표지조차 넘기지 못하고 있던 책은 서문을 읽은 순간부터 단숨에 읽히더군요.


선생님께서 책을 추천해주실 때 "창의적인 삶" 파트가 저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셔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저는 "무력감에 대하여" 파트를 읽으면서 회사 점심시간이 말그대로 순삭하는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무력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 감상문은 일하다 생각을 못 참고 화장실로 가서 쓰는 글입니다.)


죽어라 일한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번아웃 내지는 일태기라고 치부했던 감정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오게 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무력감.

168p를 보면 "내가 이런저런 행동을 하면 만사가 바라는 대로 바뀔 것이다. … 자신이 특정 행위를 마법적 제스처의 의미로 …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만사가 바라는 대로..


글쎄요,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만 과거에는 내가 "아"하면 사람들이 "어"라고 답할 줄 알았습니다. 섭섭하다고 말하면 미안하다고 대답해줄지 알았고, 화를 내면 반성할 줄 알았죠. 관계란 사람과 사람 상호간의 작용인데 저는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를 했던 거였어요.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아닌 벽에 대고 혼자 말하는 것 처럼요.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남에게 강요했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많이 되물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물었음에도 또 다짐하기 전처럼 남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게 되더군요.


언젠가부터 주기적으로 꽤 자주 나타나던 무력감이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대해 오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저는 아직도 저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현실이 그렇지 않았을 때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아팠나봐요(책에서 증오로 표현하는 감정이요).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오만한 마음인지요?


1) 내 생각만이 정답은 아님

2) 남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폭력임

3) 내가 바라는 대로 바뀌는 세상은 없음


이 모든 것들을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질 않네요. 이래서 인간은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하고 죽기 전까지 (어쩌면 죽어서도) 어리석은 존재인가 봅니다.


궁금합니다. 그럼 부조리한 세성에서 나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주위 사람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조자 하면 안되는 건가?

사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는 기준을 세우고 신념을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겉멋이 잔뜩 들은 말을 늘어놓았지만, 이 책을 핑계로 진실을 고백하자면 제 기준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잡은 기준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남모를 망설임이 항상 제 발목을 잡아요.


선생님께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이것도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입 밖으로 내뱉었을까요?) 저는 책을 읽을 때 마다 나름대로 스스로가 높은 수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자만해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책을 읽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생각해 본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고들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반추하며 제 우물의 크기를, 제 천장의 높이를 충분히 남들보다 크고 높다며 자만해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보니 제 우물은 사방이 거울로 된 것처럼 스스로 보기에 커보일 뿐 실제로는 좁고 낮은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두드려보고 꼼꼼히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우물 확장 공사를 해야겠어요.


이 책 덕분에 저는 블랙 박스로 두고 정의조차 내리지 않았던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림자도 저의 일부니까요.


저는 아직도 많이 모자랍니다. 그동안 했던 말들로 인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 었어요. 문상훈 작가의 에세이『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 저의 괴로웠던 마음과 못났던 생각을 다독여서 그 동질감에 위로가 됐다면 이 책은 앞으로 삶을 살면서 그리고 사람으로 살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간만에 정말 부끄럽고 반성했습니다. 감사해요.


당분간 저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무력감을 쓰다듬어 볼 생각입니다. 하나하나 (문상훈 작가 말대로 해부해가며) 내가 또 내 욕심에 바꿀 수 없는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한 건 아닌지, 그 거만으로 인한 무력감에 헛된 소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죽어서도 소비하는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살펴야겠습니다.


부끄러운 꺠달음을 단어들로 포장하는 것 조차 부끄럽지만, 이 책을 추천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보잘 것 없는 이 감상문을 드립니다.


ps. 미스 함무라비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입니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이 예이츠의 <하늘의 천>을 낭독하는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책에도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 영향을 준 시입니다(아래 시 전문). 맹목적인 희생과 사랑은 참 경이로운 감정인 것 같아요. 가볍게 즐겨주세요.


하늘의 천

예이츠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옇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 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2024.03.06 수요일의 늦은 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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