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1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by 퇴근하는 팥죽

ㅡ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 ㅡ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을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솔직히 말하면, 글보다는 드라마로 더 많이 봤지만.


어렵지 않은 문체와 복잡하지 않아 술술 읽히는 스토리 라인, 깔끔한 기승전결이 일본 문학의 입문서로 편하게 읽기 좋았다. 그러면서도 공장처럼 끊이지 않고 찍어내는 그의 작품들이 신기했고 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년이 걸려서 한 권을 완성하기도 하는데 게이고는 정신 차려보면 2-3권씩 신작이 나와있으니 말이다.


블랙 쇼맨을 처음 읽었을 때는 상당한 흡입력에 '역시 게이고 상...'이라고 생각하며 훅훅 읽어냈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꽤 늘어지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집중력이 흐려지는 바람에 완독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나? 식상하고 뻔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시리즈는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깊게 생각을 하게 된 장면이 나왔는데, 바로 피해자의 딸이자 다케시(블랙 쇼맨)의 조카인 마요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사정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장면이다. 마요의 아버지는 범인에게 살해당할만한 약간의 여지(강간이나 폭행 같은)도 주지 않았지만, 범인이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성공과 명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살해를 당했다. 근데 마요는 그 명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마음이 이해가 돼서,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안타까움이 더 컸다는 말을 한다. 나참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약간은 삼천포로 빠지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최근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점점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데에 그 이유를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해오다가 생각해 낸 가장 설득력이 있는 원인은 엄마의 '엄마 선택'이다. 나는 원래부터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기분을 살피는데 능한 사람이라, 상대방이 나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마음의 문을 닫고 기대를 내려놓는 경향이 있다.


이게 어느 정도 광적으로 심각해서 아니다 싶으면 상대방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오만 감정을 無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제3 자라고 생각할수록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보살 마냥 너그러워지는데, 이게 그만큼 그 사람한테 (나를 위해 무언갈 해줄 거라는) 어떠한 기대도 없다는 뜻이라서 말 그대로 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내가 부모님을 타인으로 생각하는 게 옳나?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가 당신의 엄마를 보살피는 것으로 60대를 보내기로 결정한 순간,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녀를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만큼 나는 심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이고 (물리적 거리는 이미 멀다.), 엄마는 아마 내가 당신을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 솔직한 말로는 '당신의 감정만 생각하고 당신은 사연 있고 하시고 싶은 대로 사셔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물론, 부모님은 타인이 맞고 인생은 혼자가 맞긴 하는데, 나는 독립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옆에 누군가 있는 상태로 독립적인 형태를 취했기에 실제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근데 현시점에서 부모님을 (어느 정도) 타인으로 느끼게 됐고, 오랜 기간 벗으로 삼던 사람과 단절되면서 아마 진짜 고독이 나를 잠식하는 중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진짜 잠식인지 아니면 지나가는 어둠인지는 모르겠다.)


무튼 얘기가 너무 멀리 갔는데, 책을 읽다가 이 생각을 왜 하게 됐냐면, 마요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제삼자 취급'에 익숙했다. 같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지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모-자식 관계보다는 교사-학생 관계로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는 더더욱 딸을 내쳤다. 그렇게 되면서 마요도 부모님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줄어들고, 아버지를 타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게 아닐까라는 씁쓸한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겪는 이 감정들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인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부모님의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서, 사춘기 때 낯선 감정이 크게 와닿는 것처럼 지금의 감정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완독일자: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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