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2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by 퇴근하는 팥죽

ㅡ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 ㅡ


어제 상실의 시대를 다 읽고 난 후에 상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다시? 사실 다시가 아니다. 요근래 계속 곱씹던 생각이 결국 상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와 관련된 누군가가 죽게 되어 상실감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니나, 항상 옆에 있던 존재들에게서 동떨어져 나와 혼자라는 기분을 계속 가지고 있게 된 요즘이. 와타나베(주인공)가 느끼고 있던 그 감정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와타나베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기즈키: 나오코와 영혼을 나눈 상대, 흔한 팬픽+웹소설의 클리셰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던 단짝 친구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나오코와 그렇게 꼭 한 몸 처럼 붙어 다니던 사이이다. 어째서인지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이후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도 흩어지게 된다.


- 나오코: 와타나베의 첫사랑, 와타나베에게 나오코는 커피프린스 1호점의 남자 주인공인 최한결에게 한유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상실의 시대에서는 더 멘탈...적인.. 이란 표현말고 설명할 수 있는게 뭐가있을까 영혼,, 그래, eternal love 처럼 표현해서 좀 더 신성하달까? 뉘앙스가 약간 다르긴하나, 최한결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습관' 이 아닐까 싶었다. 와타나베에게는 본인보다 먼저인 존재는 없다. 그 사실을 전제로 깔고 가장 깊고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던 존재라고 하면 그게 바로 나오코 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게 사람을 좋아해본 적이 있는데, 섣불리 적극적으로 무언갈 한다기보다는 옆에서 있으면서 나의 존재를 잊지는 않게 하되, 그 사람에 1순위가 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나의 1순위도 그사람(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에게 주고싶지 않은, 하지만 나는 '사랑'이란 걸 하고 있다는 인지를 하고있는싶은 것이다, 스스로. 보통의 드라마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10년 이상의 짝사랑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상태일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10년 가까이 아무도 만나고있지 않고 여전히 지금도 밤만 되면 자주 그 아이를 떠올리는데 그럼에도 잊지 못했으니 다시 만나려는 노력을 하고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잊혀지지 않아서 잊지 않았을 뿐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말을 왜 썼나 싶긴 한데, 난 오래된 사랑을 보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흔히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어야 한다고 하는지도 알 것 같고,, 사랑은 참 신기한 것 같다. 이성과의 사랑 경험은 아주 적지만, 나에게는 참 강렬한 기억이었고 대체할 수 없는 기억이다. 아마 와타나베에게 나오코도 그런 존재 였겠지. 가지지 못해서 더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 미도리: 그럼에도 나는 '미도리' 그녀를 와타나베의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사랑말이다. 몽상가스러운, 요즘말로는 극N스러운 사랑을 나오코와 했다면, 와타나베가 현실에서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미도리였는데, 그가 사랑을 알 수 있었던 그 많은 기회를 진짜로,,, 발로 뻥뻥 차버렸다는 것이다. 미도리는 주인공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존재였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흠,,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와타나베에게는 나오코를 제대로 보내줘야하는 시간을 가지긴 했어야했고(그게 레이코와의 성관계를 맺는 것이었던 건 유감이다.) 미도리에게 설명을 해줬으면 미도리는 이해를 해줬을 텐데,,, 왜냐면 미도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한달 넘게 연락이 되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아버지를 보내주는 시간, 애도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와타나베의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량을 가진 멋있는 여자임을 몰랐던건 와타나베의 어리석음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와타나베는 제대로 사람을 사랑할 줄도 그리고 자기의 마음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가장 사랑했던 인물이다.


- 나가사와: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캐릭터. 내가 전문가는 전혀 아니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는 소시오패스가 아니면 나르시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사회에서 본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즘(악한 면 관점에서 말고 그냥 이론적으로 봤을 때)은 남의 감정을 읽는 것보단 지금 나의 감정이 가장 먼저이고, 나의 행동들 로 인해 상대방이 어떤 마음을 갖게될 지 고려하는 등의 상호작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좋게 말하면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붙잡는다 이긴 한데,, 적어도 본인을 떠나는 사람이 본인으로 인해 상처 투성이가 돼서 떠나는지는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후. 하지만 그는 매우 솔직하고 간결한 사람이기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아마 와타나베가 여러 상실들을 반복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가사와가 걷는 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나가사와가 싫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말 못되긴 했지만, 하쓰미는 본인의 선택으로 나가사와의 곁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녀 뿐만아니라 그에게 마음을 줬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만 얘기해보면 그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되쳐먹은 놈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만큼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지. 그는 이기적이지만 의도적으로 본인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고 하진 않는다. 이게 약간 어렵긴 한데,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행위들이 아니다. 진짜 말그대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일단 질러보고 아니면 말자의 태도를 계속 취하는 것이다. 마치 바다에 던져 놓는 통발처럼. (그리고 그 통발에 계속 들어가 있는 하쓰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군소같은 존재가 아닐까) 아마 나가사와는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 것이고, 죽을 때도 별 생각없이 생을 마감할 것이다. 아니면 이제 섹스는 못하겠군 정도를 생각하려나,,


- 하쓰미: 가여운 여인이여,, 굳이 굳이 S와 M으로 그녀의 성향을 구분하자면 그녀는 극M 중의 M일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나쁜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쓰레기 컬렉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보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나가사와를 사랑했던 것일까. 나는 사랑을 잘 몰라서, 사랑밖에 난 몰라 부류의 사람을 보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하쓰미를 만나면 나가사와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어보고싶다.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가여워)하는 걸로 보이긴 한다. 그리고 나름 이 남자를 나로 인해 바꿔놓을 것이다 라는 정복욕이 모순적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실패에 익숙해지고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M 성향으로 버림받는 상황에 성적 흥분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걸 통틀어 그녀가 사랑스럽다. 타인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는 그녀가 참 멋있고 가엽고 예쁘다. 서덕준 시인의 시 하나가 떠오른다.

물망초의 비밀 - 서덕준
당신은 봄볕 하나 주지 않았는데

나는 습한 그늘이었는데
어찌 당신을 좋아한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꽃을 틔웠습니까.

나가사와와 하쓰미의 관계를 보면, 시그널의 김진우(이상엽)가 떠오른다. 유승연(서은아)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사랑이 뭔지 몰라 그가 하던대로 '구원'을 핑계로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하(고싶었)는 상대를 잃은 큰 상실감에 빠져-아마 상대를 잃은 상실감이라고 생각도 못 할 것이다. 그냥 마냥 허한..감정-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 연쇄살인범 말이다. 나가사와 역시 하쓰미를 사랑했지만, 평생 본인 말고는 누구를 사랑해 본 적 없던 그가 하쓰미도 역시 기존의 여자들처럼 대했고 (물론 그녀가 특히 훌륭한 여자임은 인정했지만) 그녀가 떠나고 난 후,, 흠,, 생각해보니 그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그로 인해 나가사와와의 연을 끊은 것은 하쓰미의 죽음으로 인해 '각성(?)' 하게 된 와타나베였다. 그리고 이게 나가사와와 와타나베의 차이점이지 않을까 싶다.


- 레이코: 이 아줌마는 뭘까...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인물이다. 정리가 안 된다.


완독일자: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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