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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Sep 19. 2022

검은 대문을 열어본다.

괜찮은, 기억들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시간을 내어 혼자 동네를 걸어본다. 잠깐의 휴식이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내가 사는 동네 길을 따라 걷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검은색 대문이 보이는 골목의 앞에 섰다. 몇 번이나 차를 타고 지나친 길인데 여기 골목이 있었는지도, 이런 대문이 있었는지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은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만 같아 좋다. 구석진 골목 어귀의 소란스러움도, 대문이 예쁜 이층 집도, 담벼락의 넝쿨들도 내 눈에 한순간 보물처럼 느껴지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얼마 만에 차가 아닌 발로 걸어보는 길인가.  한 발치 들어선 곳에 검은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지나쳐 버리는 어디에나 있는 문이지만 지금부터 나는 문을 통해 내 이야기를 담아볼까 한다. 

오래되고 어두운, 냄새나는 길가의 대문이지만 무언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검은색의 대문이다. 왠지 오랜 시간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늦게 알아봐서 미안해.


 한참을 보고 있으니 처음 내가 내 아이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너도, 이 대문 색깔처럼 어둡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곳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움츠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나와 만날 날을 기다리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이를 만나면 제일 먼저 뭐라고 말해야 할까 늘 고민했다. 너와 나는 어떤 일상을 함께 만들어 낼까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만날 날을 기대했었다. 대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고 열리듯 아이는 우리 사이의 검은 문을 열고 나에게 안겼다. 처음 만난 너는 세상에. 너무 작고 못생겼다. 아기들은 다 천사처럼 하얗고 예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대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난 날이 어제의 일처럼 생각난다. 누군가 그랬다. 아기는 엄마보다 더 큰 고통을 뚫고 세상에 나오는 거라고. 나는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작은 아이는 검은 문을 활짝 열고 나에게 왔다. 비록 우리의 시작이 검디검은 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더없이 밝은 빛이 이 아이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들도 그때처럼 작지만 밝은 빛과 같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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