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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Oct 25. 2022

원동마을 초록 대문

괜찮은, 기억들


봄을 알리는 원동마을


  매화꽃이 봄이 왔음을 알리는 원동역을 뒤로하고 마을로 발을 옮긴다. 벽화로 가득한 마을의 끝으로 골목이 보인다. 매화가 가장 밝게 빛나는 날 눈에 꽃을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조금 더 걸어서 마을을 보고 갈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처음으로 마을을 둘러본 것은 몇 해 전 어반 스케치를 시작하고 처음 정모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설렘과 어색함,  망설여지는 마음으로 가득 찬 풍선을 아무도 볼 수 없게 마음속에 꾹꾹 누르고 나는 임점숙 작가와 함께 정모에 참석했다. 일찍 도착한 나와 임점숙 작가는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을 눈에 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어반 스케치 정모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때 둘러보던 골목을 따라 잠시 내 발을 잡아두던 노란 벽이 아직 그 자리에 같은 옷을 입고 서있다. 벽을 따라 있는 돌담도, 녹이 슬어 나이가 들어버린 초록 대문도 그대로다. 나는 대문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모습으로 그와 마주 보며 서서 그날을 회상해본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마을로 들어가면 있는 커피 푸른창 카페도 여전히 계절을 알리는 나무와 꽃이 함께 하고 있다. 내 첫 어반 스케치는 바로 이곳이었다. 밖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은 우리는 카페 루프탑에 앉아 커피를 즐기며 수다를 떨었다. 모이는 시간(우리 정모는 정해진 시간에 완성한 그림을 가지고 정해진 장소 앞에서 모인다.)까지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력도 요령도 없는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시계의 초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가는 초를 막을 수 없는 시계의 바늘이 된 것처럼 나는 초조해졌다.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약속은 지켜야지. 다 그리지도 못한 그림을 가지고 나는 급하게 원동역 앞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원동마을에서의 내 첫 정모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설렘과 망설임으로 가득했던 풍선은 어느덧 충격과 다음 정모에는 꼭 완성은 하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금 나는 다시 그날처럼 잠시 나를 잡았던 초록 대문 앞에 서서 풍선을 꺼내어 본다. 풍선 속에 가득한 열정을 도망가지 못하게 꼭꼭 묶고 있다. 내가 미완성에서 완성의 길로 한걸음 갈수록 초록 문은 더 낡고, 녹슬어 가겠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문 앞에 섰을 때 노란 벽과 함께 나를 기다려주길 바란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오늘처럼 마을에 남아 나는 기다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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