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기억들
평일 오전 10쯤이면 핸드폰 알람 소리가 들리고 오늘의 메뉴가 뜬다. 오늘은 어떤 것을 주문할까 잠시 고민하는 시간이다. 매일 사 먹지는 않아도 이상하게 매일 기다려지는 알람 소리다.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신혼 초에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먹다 보니 재미가 없었고, 아이를 낳고 얼마간은 아이가 먹을 음식만 하다 보니 실력이 늘 기회가 없었다. 음식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혼자 먹는 시간도 좋지만 똑같은 음식이라도 누군가 옆에서 함께 먹어주고, 맛있다고 해주면 더욱 맛있고 신나서 만들게 되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기회가 생겨 요리학원도 다녀 봤지만 학원에서 배울 때 잠시 신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학원에서 배운 대로 집에서 가족이 먹는 양에 맞춰 다시 해 먹어보면 학원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났다. 요리학원은 왜 1~2인으로만 해야 맛있을까? 내가 모르는 비법이 틀림없이 있다. 나는 그 비법을 다 배우기 전에 학원을 떠나고 말았다.
그저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는 시간 맞춰 전날 씻어놓은 쌀을 밥솥에 놓고 취사 버튼을 누르는 것과 1년마다 돌아오는 가족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끓여먹는 미역국 정도이다.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고민하게 되는 소풍날. 새벽부터 일어나서 갓 지은 하얀 쌀밥으로 싸는 김밥과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문어 소시지, 당근을 잘라 닭 볏을 만들고 행여나 삐뚤어질까 숨을 잠깐 멈추고 꽂아야 하는 검은깨를 넣어 만든 꼬꼬 메추리알을 도시락으로 채워 있는 대로 힘을 준 소풍 도시락은 내 요리의 최고 결정판이다.
결혼을 하고 이것저것 만들어 봤지만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늘려갈수록 주방에서 기웃거리는 시간이 저절로 줄어든다. 그런 나에게 괜찮다며 용기라도 주듯 친정 엄마는 "요즘은 다 사 먹는다. 먹고 싶은 거 사 먹어라." 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딸이니까 오늘도 검정 봉지 가득 먹고 싶은 반찬을 미리 주문해 두었다가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잠깐 들러 찾아온다.
남의 집 어머니지만 오늘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