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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Oct 26. 2022

서리단길 물고미 사진관

괜찮은, 기억들


 그런 날이 있다.

사진으로 오늘 하루를 기억하고 싶은 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 아이들이 쑥 자라 있는 모습을 보고 문득

'아. 오늘이 또 오지는 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있다. 다른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날을 잘 못 잡았나 보다.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쇼윈도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카메라들이 눈에 보인다. 익숙한 카메라도 있다.      









 예전에 사진관에서 잠깐 일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한창 프로필 사진이 유행했었고 사장님의 렌즈를 통해 담긴 모습은 내 앞의 모니터로 전해졌고 나는 잘 찍어진 사진을 마법의 손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했었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사진으로 한 번에 현상되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이렇게 꼭 물어봐야 했다. 어디를 더 고치고 싶어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를 더 고쳐주세요.” 하고 주문이 들어온다. 나는 마치 마술사의 요술봉처럼 작은 펜을 손에 쥐고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만족스러워할 때까지 얼굴의 이곳저곳을 고쳐주곤 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본인의 얼굴을 다르게 기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내 눈에 보이는 얼굴과 사진의 주인이 생각하는 얼굴은 늘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에 희망 사항을 담는 걸까? 아무렴 어떠한가. 현상된 사진은 다른 듯 닮은 얼굴을 가진 주인의 손에 들어갔고 사진관을 찾은 손님의 입꼬리와 눈꼬리가 만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도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만족스러워지는 일이었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본 지 오래다. 집에 있는 카메라로 다시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작동은 할까?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카메라도 녹이 슬어버린 마술사의 요술봉도 추억 속의 일일 뿐이다. 최신 휴대폰으로 늘 업데이트되는 앱 하나만 있으면 힘들게 요리조리 고치지 않아도 충분히 맘에 드는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을 수 있지 않은가.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종이로 남기는 맛이 사라져 버렸다. 의미 없는 사진들이 쌓이고 휴대폰이 더 이상 새로운 사진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휴대폰에 남아있는 사진들을 모조리 지우고 나면 모든 기억이 남아있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진을 뽑아서 앨범에 정리하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옛날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날이다.


 오늘은 너무 아쉽게 돌아가야 하지만 다른 사진관을 찾기보다는 다시 이곳에 꼭 와서 지금 순간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보고 싶다. 비록 앨범은 없지만 벽에 예쁘게 붙여두고 오가며 아이들과 그날에 대해 떠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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