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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Oct 22. 2022

삽질하는 꽃쟁이

괜찮은 기억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내린다. 비가 땅에 닿는 소기가 귀를 울리고, 풀잎에 떨어지는 비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잎을 적신다. 미쳐 풀잎에 닿지 못하고 그 사이로 떨어져 버린 비는 흙을 일으켜 내 코끝까지 와 있다. 화분으로 가득한 작은 정원이 보인다. 발길이 저절로 가게 앞으로 향해 가는 기분이다. 너무 늦게 온 걸까? 불은 이미 꺼져있고 문은 닫혀 있다. 아쉬움이 가득한 두 다리는 닫혀 있는 문 앞을 한동안 떠날 수 없었다. 불 꺼진 어둠 사이로 작은 꽃들이 보인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꽃이 있다. “오늘이 로즈데이래.” 하며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던 사람이 있었다. “장미꽃 꽃 말이 사랑 이래. 몰랐지? 꽃다발 사려다가 네가 장미꽃 싫어해서 한 송이만 샀어.” 하며 꽃 보다 더 환한 미소와 함께 건넨 꽃 한 송이를 받으며, 나는 장미처럼 탐스러운 미소로 화답했었다.


  온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한 비가 오던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마음을 다 전하기도 전에  꽃잎이 다 떨어져 어떠한 온기도 남아있지 않아 다 시들어버린 꽃처럼 내 옆자리를 남겨두고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인사도 없이.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만날 수 없는 멀고 먼 곳으로 영원히 떠나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쏟아지는 비와 함께 울고 또 우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저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꽃집을 갈 때면 장미꽃을 보며 그날을 떠올리곤 했었다. 세상 어떤 장미도 수줍게 웃으며 전하던 그날의 장미만큼 붉고 아름다운 꽃은 없었다. 장미꽃은 아프고도 사랑스럽다. 오늘은 그날처럼 아름다운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다. 하지만 이미 닫혀버린 문이 오늘따라 더 야속하기만 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 다시 들러 가게 앞에 놓인 많은 화분도 찬찬히 둘러보고 정원처럼 예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다른 꽃들도 보고 싶다. 다시 오게 되면 꼭 장미꽃을 사 가야지. 

 

 목구멍이 타는듯하다. 뜨거운 것이 흐리기 전에 뒤돌아서서 오늘은 마음으로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건네 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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