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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Sep 21. 2022

서리단길, 바르지오

괜찮은, 기억들

  뜨거운 해를 가려줄 구름들은 오늘 멀리 놀러 갔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시원한 바람이 마스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코를 간지럽힌다. 나도 구름처럼 잠깐 다녀와야겠다.



서리단길.


 많지는 않아도 주인의 취향대로 마음껏 치장한 작은 가게들이 보인다.


서리단길에 자리잡은 바르지오


 조금 촌스러운 듯 창문을 꾸민 스테인드글라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벽은 노란 병아리처럼 귀엽다. 바르지오... 바르지오? 뭘 바른다는 건가? 아... 도배하는 집이다. 아마도 풀을 바른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이곳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가게의 재치 있는 이름은 주인을 닮았을 것만 같다. 아쉽게 일요일이라 가게 문은 닫혀있다. 아니면 외근이라도 나간 걸까?     


 도배를 하는 집.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니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는 매시간마다 집이 금방 무너지기라도 할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작은 방이 딸린 가게를 하셨다. 도배지를 바르고 장판을 깔아서 헌 집을 새집처럼 예쁘게 화장시켜 집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다.

 

 가게의 문이 열릴 때 나는 냄새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본드와 밀가루 풀이 섞인 냄새와 오래된 건물에서 풍겨져 나오는 눅눅한 냄새들이 한데 섞여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으로 장판들이 고개를 곳곳이 쳐들고 나란히 줄을 서 있었고 그 위로는 예쁜 무늬의 도배지가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가게는 예쁜 종이들로 넘쳐났고 나는 그 종이들을 탐냈지만 내 몫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게에서 만큼은 야속한 아버지인 것 같다. 샘플 도배지가 방에 가득 있어도 한 장도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달라고 떼를 써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그런 아이 었다. 일이 끝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면 땀 냄새와 가게에서 맡던 냄새가 늘 함께 따라왔다. 지금도 아련히 어디선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여기 바르지오도 그런 냄새가 날까?


  스테인드글라스 문에 꽃그림이 있는 걸 봐서 이곳은 더 좋은 냄새가 날 것 같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도 바르지오 사장님의 손을 거쳐 이곳처럼 예쁜 집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더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한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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