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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May 26. 2022

홈, 스위트홈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이 집은 생애 처음으로 구입한 집이다. 결혼 후 4년 만에 우리 집을 사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첫째는 4살이었다. 준서가 이 집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엄마 여기 우리 집이야 진짜 우리 집!! 너무 좋아 까르르' 하며 발을 콩콩콩. 거실을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인 것을 대체 어떻게 알지 신기했지만 첫째가 기뻐하니 우리 부부도 몹시 흐뭇했었다.   


처음으로 생긴 내 집이어서 그런 것인지 신축 아파트에 흠이 나는 게 싫어서 그런 것인지 나는 아마 둘 다의 이유로 집을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둘째가 두 살이어서 손이 많이 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을 이용해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닦아내는 등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을 돌봤다. 쉬는 시간도 없이 살림을 하다 보니 몸은 축나고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그 무렵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던 동네 엄마들과의 작고 큰 에피소드들은 내 마음을 공허하게 했다. 우리 집은 좋았지만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남편 본사 발령으로 급작스럽게 이사를 가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이곳을 떠나   대도시로 가게 됐다. 이사할 집은 도시의 끝자락에 위치했지만 유명 음식점들, 대형 마트, 학원가가 주변에 있었고 10km 정도만  가면 백화점이 있었다. 워낙  도시에서만 느낄  있는 생기발랄함을 즐기는 나는 '다시 대도시로 가는구나 옳다구나 재밌겠다' 하며 신나 했다. 하지만 신나는 기분도 잠시, 매일 아이들을 라이드  학원 보내고 30km 넘게 운전만 하며 기사 노릇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근처에 대형 마트들이 있어도 걸어서   없는 거리였으며 아이들 유치원도 버스 운행을   내가 직접  드롭을 해야 했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면 밤 열한시에나 집에 올 정도로 바빠 나 홀로 육아를 전담했다. 결국 몸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고 거의  달에 한번 꼴로 아무 이유 없이 구토를 하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렇게 2년을 살다가 남편 발령으로 다시 예전 우리 첫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오니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살고 있을 때는 이곳이 나에게 맞는 곳인지 아리송했다. 둘째가 어렸고 산후우울증에 걸린 상태였기에 내 집에 대한 애정은 높았지만 이따금씩 이 동네를, 이 집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왕왕 들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니 마트, 도서관, 병원, 학원, 학교 등 모든 것이 걸어서 3분 내로 해결되는 우리 동네가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준서가 초등학생이 되니 왜 사람들이 학군을 따지는지 절로 이해가 됐다.(우리 동네는 학군지가 아니다. 다만 학원가가 나름 형성되어 있다.) 학원 상가가 쭉 형성되어 있기에 아이가 스스로 동선을 잘 짜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이유 없이 계속됐던 토사곽란은 이사 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축가 유현준은 "내 공간이란 내 규칙을 심을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하며 어떤 옷을 어떤 순서로 정리하느냐에 따라 나만의 규칙이 생기고 마치 거울처럼 나 자신을 반영하는 공간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영향력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ㄷ자 형태로 넓게 빠진 부엌은 음식을 하며 아이들과 대화하기도 편하다. 수납공간이 넓어서 좋아하는 그릇들을 색깔별, 용도별로 나누어 장에 넣고 자주 먹는 스낵과 커피류도 손이 잘 닿는 곳에 넣어 보관한다. 식사를 마치고 내 규칙대로 말끔하게 정리된 부엌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끝냈구나'라는 안도감이 든다.  


지난주 친구가 지하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들만 둘인 친구는 일부러 1층으로 이사를 했고 본인 집 내부에 지하실이 있어 지하에 있는 방은 남편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남편만의 공간으로 꾸며주었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지하 벙커 같은 느낌만 생각했던 나는 친구가 보내준 집 사진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하인데도 불구하고 나름 채광이 좋았다. 그리고 깔끔한 거실과 아기자기한 방들을 보며 친구가 본인만의 취향과 규칙을 심을 수 있는 곳을 찾았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맘껏 뛰어놀았고 남편과 분리된 친구는 편안하다고 했다.


유현준 교수는 "공간은 물리량이 아닌 기억의 총합이다. 집에 4가지 기억이 있으면 공간도 4배 넓게 느껴진다."라고 했다. 적극 공감한다. 매일매일 운전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케어하며 몸이 아팠던 예전 집에서는 행복한 기억만 있을 리 만무하다. 첫째가 우리 집이라고 콩콩 뛰며 좋아했던 날, 둘째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스스로 걷던 날, 가족 친구들과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좋은 일만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 집에서 우리는 지지고 볶고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뿐이다.

 

나만의 규칙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일 것이다. '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마나 포근하고 안락한가. 홈, 스위트 홈. 우리는 결국 모두 집에서 또 다른 하루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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