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yet
삶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만큼 각양각색의 가치관들은 충돌하기 마련이다.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건 당연하다.
겸허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나조차 어떤 면에서는 겸허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평생 거슬리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나왔어도 속으로 거슬리네, 하고 말았는데
요즈음 자꾸 입 밖으로 훈계가 나오려고 한다는 것.
아직은 참고 있는데......
이게 입 밖으로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쉽게 설명해줄게?“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거겠지?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Not yet.
가족들과 식당에 갔는데 입구에서부터 눈에 띠는 여자애가 있었다.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였는데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웃으며 다니고 사람들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고, 그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뿌듯한 듯 그 여자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슬렸다.
스스로 귀여운 줄 알고 사람들의 귀엽다는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는 애는 내 눈엔 귀여워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의 식사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데 애 엄마가 혼내기는커녕 그 상황을 즐기고 앉았다니.
그러고 자리를 안내받아 앉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애가 아니나다를까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신조가 짙은 사람, 뭘 먹을 때 건드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근데 그 아이가 겨울왕국 노래를 부르며 얼음으로 변하는 시늉을 하라는 건지 뭔지 알 수 없는 요상한 손짓으로 내 식사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반응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그 여자애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애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노려봤다.
그 애 엄마는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살면서 늘 나는 노려봤다고 생각하지만 눈꼬리가 쳐져서인지 상대는 그냥 쳐다보는 걸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줌마도 그냥 쳐다보는 걸로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반응이 없자 여자애는 더 크게 노래를 부르며 우리 테이블 근처를 맴돌았다.
나는 우리 애들이랑 이야기하기도 바빠서
너의 노래까지 듣고 귀엽다 예쁘다 해줄 여유가 없어.
다시 한번 그 아줌마 쪽으로 날선 눈빛을 보냈다.
그 꼬마애를 노려보기는 싫었다.
두 번째 시선에서 눈치를 챘는데 아줌마는 여자애를 불렀고 우린 가족은 그때부터 식사에 몰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사 여왕은 식사를 마치고 떠났다.
그 때 문득 두 번째 시선에 눈치 채지 못했다면
내 입에서 “애기엄마, 애 교육 그렇게 시키는 거 아니에요. 라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운 노래에
그냥 듣고 귀여워^^ 하며 한번 웃어줄 수도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속이 콩알만할까 싶은 반성은 차치하고,
내가 먼저 육아의 길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뒤따라 걸어오는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는 마음이 육성으로 터져나올 뻔 하다니.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 무슨 목적으로 그 길을 걷는 줄도 모르면서 훈계라니.
어머 애기엄마 애가 발이 춥겠어 양말 신겨요
애기엄마 애가 저럴 때는 꽉 잡아서 기를 꺽어줘야지
앞에서 길을 걸으며 나한테 저렇게 선생질 하던 사람들을 그토록 증오했던 나인데,
내가 그럴 뻔하다니?
소름.
거슬리는 사람들이야 늘 있었지만
훈계가 입 밖으로 나올 뻔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요즘 또 신혼부부들이 그렇게 거슬린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니 배우자가 완벽해보이는 거야 이해하는데,
보세요, 나의 결혼은 완.벽.해요.
내 남편 자상하고 듬직하죠?
내 아내 예쁘고 똑똑하죠?
우리 시부모님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나 장인어른 장모님이랑 이만큼 잘 지내요.
우리 정말 결혼 잘했죠?
이런 식의 피드들은 정말 거슬린다.
처음에야 다 그렇지,
제일 괜찮은 후보랑 결혼했는데 결혼했는데 웬만해선 마음에 안 드는 게 뭐가 있겠어? 전부 행복하지.
싸우고 울고 불고 해도 화해하면 재밌지.
모든 생활이 깔깔 즐겁지.
시트콤이나 로코 주인공이 된 마냥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애 낳고 십년만 흘러도 그저 그런데 말이다.
행복하지만 나만 행복한 거 아니고,
힘들어도 나만 힘든 거 아니고, 다들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만 특별한 게 아니란 걸,
남들보다 내가 우월한 것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걸 아는 입장에서 보니 왜 이렇게 거슬리는 젊은 부부들의 피드가 많은지,
왜 또 꾸역꾸역 그걸 찾아다니며 보고 앉았는지.
알콩달콩이야 귀엽고 예쁘지.
울남편 울마눌 어쩌고 최고야 저쩌고 하는 게 꼴 보기 싫은 거다.
나도 한때는 나의 결혼이, 나의 남편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은근히 자랑도 하고 다녔다.
그때 별말없이 웃으며 좋을 때다, 해주시던 어른들을 닮아야 라는데
왜 자꾸 살아봐라 비아냥대던 어른들을 닮으려 하는지,
그 마음 언제까지 가나 보자 하며 훈계하던 어른들을
닮으려 하는 건지.
그런 꼰대로 늙고 싶지 않은데.
그러고보니
예전엔 눈빛에 반항기가 좀 있는 배우들을 좋아했는데요즘은 부쩍 예의 바른 애들이 좋다.
직장에서도 자기 주장 또렷한 후배보다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후배들이 예뻐 보인다.
애한테 너무 맞춰주기만 하는 젊은 부부를 보면 괜히
한 마디 하고 싶고,
이렇다 할 꿈도 없이 그저 그런 직업에 만족하는 애들을 보면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라 응원하고 싶고,
일이 힘들다는 애들에겐
그게 힘들면 세상에 널 위한 자리는 아르바이트도 없다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고,
내가 보기에 별일 아닌데 예민하게 굴면
내가 다 해봤는데 괜찮았으니까 정신 차리고 중요한 포인트에 집중하라고 훈수두고 싶고......
’싶고‘ 라 다행이지.
‘싶고’ 에 그치니 아직 꼰대는 아닌 거겠지.
그렇지만 언제 입 밖으로 라떼는, 이 터져나올지 모를 일이다. 위험하다.
스스로 꼰대가 아니고 말하는 사람은 꼰대라던데
아직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면
나도 이미 꼰대인 걸까?
늘 생각한다.
괜찮은 어른으로 늙고 싶다고.
고요한 내면이 외면으로 이어져 안과 밖이 모두 아름답게 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 공부와 글쓰기,
내게 맞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아량인 듯하다.
나의 시선에서 뭘 좀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나아가 설사 매너가 없어보인다 해도 큰일 아니라면
지나치는 아량.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입이 근질거려도 그냥 지나치는 아량.
현명함.
후회가 된다.
어제 여자아이에게 웃어줄 걸 그랬다.
정색하고 그 아줌마를 노려본 스스로가 창피하다.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런 꼬마를 향해
아량 넘치게 웃어줄 수 있을까?
그래야지, 다짐해본다.
저기요, 애기엄마.
애 그렇게 키우는 거 아니에요.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봐요.
나 때는 애가 공공장소에서 그러면......
...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가뜩이나 삶이 분주한데
와중에 사사건건 충돌 많은 꼰대로 늙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