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이유

맑음

by 윤성

여전히 글을 쓴다.

꾸준히 공모전에 도전하고 꾸준히 탈락하면서도 글을 놓지 않는 중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브런치에 올리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계속 쓰는 중이다.

매일 출퇴근을 하고 살림도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다.

몸이 녹초가 되어도 밤이 오면 고요히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종일 머릿속에 떠 다녔던 생각들을 정리한다.

사실 낮에도 쓴다. 일을 하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놓칠까봐 메모하고,

저녁을 차리다가도 폰 메모장에 스쳐가는 생각들을 써놓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왜?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머릿속 깊이 숨어있던 커다란 물음표가 둥실둥실 두둥실 떠올랐다.

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글을 쓰는걸까?


첫째, 돈?

어릴 때는 그랬다.

억대 작가가 되어 쓰고 싶을 때 쓰고 돈도 벌고 싶었다.

재능이나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편하게 글을 쓰고 물적으로 여유도 있는 그런 생활을 동경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코 돈은 아니다.

일단 내가 쓰는 글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당하고 또 외면 당하며 나의 글에 대한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에 머물러 있다.

돈이 되는 다른 직업을 찾은 지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요즈음 내가 쓰는 이유가 돈은 아닌 게 확실하다.


둘째, 재미?

이것도 아닌 거 같다.

내가 재미가 있어서 글을 주저리주저리 쓴 적이 있었던가? 재미로 글을 쓰는 느낌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건

머릿속을 뿌옇게 채운 거대한 솜사탕 같은 먼지 뭉텅이를 글자로 한줄한줄 풀어내는 과정인데

이건 재미있다기보다는 고된 작업이다.

사실 나에게는 글을 쓰는 게 '완성'된다는 개념도 없으므로 후련한 느낌도 받지 못한다.

볼 때마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보이고

며칠 지나고 다시 보면 또 어색한 문장이 보이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들어와 다시 보면 또 지우고 싶은 부분이 보이고 그런다.

정답도 없고 글을 쓰는 그 순간 바로바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도 아니기에

결국 재미도 내가 쓰는 이유는 아닌 듯하다.


셋째, 공감?

나의 마음을 소상히 글로 풀어내고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싶어서 글을 쓰나 싶은 생각을 해봤다.

공감이야 인스타그램으로도 할 수 있고,

동네 아줌마들과의 수다로도 풀 수 있고, 유튜브 댓글로도, 가족들과의 대화로도 가능하지만......

얼굴과 개인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동네 아줌마들이나 가족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다.

유튜브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 불특정 다수라

짧게 주고 받는 말들로 진지하게 마음을 주고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고,

인스타그램은 글쎄?

나는 팔로우 0명을 거느린 존재감 없는 흑백 유저이기에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너무 공개된 영역이라 세세한 마음을 털어놓기 창피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내가 쓰는 여러 이유들 중에서 그나마 내가 인지하는 하나의 이유인가보다.

타인이 쓴 글을 읽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나와 생각하는 수준이 비슷할 거라는 기대가 있는 거다.

또 글을 쓸 때는 기쁜 마음이나 자랑 보다는

마음 속 꼬이고 힘든 부분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부분을 토닥토닥 받고 싶은 마음, 그런 갈증으로 아마도 나는 글을 계속 쓰나보다.


더불어 넷째, 성찰?

요즈음 나는 글을 쓰며 불안을 다스리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불안과 강박이 심한 편이었는데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사실 마흔이 넘은 후로는

돈이 되지 않고 글쓰기가 재미 없어도 계속 쓰는 게 마치 묵은 분노를 풀어내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결코 모를 이유로

걷다가 그냥 뺨을 맞기도 하고 칼 같은 말에 푹 찔리기도 하고 개미 밟히듯 콱 밟히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고 어떤 날은 조금 숨통이 트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우울하다.

나는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들의 파도에 몸을 싣다보면

한없이 불안해지고 마는데 그럴 때 글을 쓰면 조금 덜 불안해진다.

불안이 조금이나마 잠재워지는 것만으로도 사실 내가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세 번째 이유 공감과 네 번째 이유 성찰 때문에 글을 쓰나보다.

하지만 사실 언젠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재미로 쓰는 글들로 돈을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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