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L어르신의 평범한 하루

맑음

by 윤성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딘가 묵직하게 깔려있는 느낌이 든다.

온 몸이 쑤신다, 그야말로 천근만근.

눈도 힘겹게 떴는데 몸을 일으키는 건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한다.

하필 새벽부터 비가 내려 관절 마디마디가 더 쑤신다.

요양보호사가 들어와 창문을 연다. 습하고 더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이 곳은 요양병원,

5층짜리 건물의 5층, 가장 구석진 방.

벽지는 흰색이지만 언제 도배를 한건지 누런 자국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았고,

이불에선 찝찝한 냄새가 난다.

불과 이십년 전만 해도 여행을 다닐 때면 숙소를 고를 때 이불 상태를 최우선으로 했었다.

보송보송한 이불,

그래서 늘 호텔로만 다녔다.

이 찝찝한 냄새의 근원은 어제 석식으로 나온 청국장일까,

새벽부터 내린 비일까, 아니면 차고 있는 기저귀일까.


요양보호사가 몸을 이리저리 굴려준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 아침루틴이다.

따뜻한 마음씨의 그녀는 나보다 서른 정도 어려보이니 아마 환갑을 막 지난 나이인 것 같다.

참 친절하다.

기저귀를 교체할 때도 미간 한번을 찌푸리지 않는다.


오전엔 미술수업이 있다.

걸어서 문화교실로 가고 싶지만 몇주 전부터는 휠체어 신세다. 목욕을 하던 중, 일어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골절됐다. 깁스도 할 수 없어 회복될 때까지 최대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회복이 되긴 할까.

오늘 미술 수업은 샤갈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오일파스텔로 따라 그려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예술의 전당에서 샤갈전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였는지 이제 가물가물,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빛의 아름다운 표현에 감명받았던 느낌만은 선명하다.

이제 손이 말을 잘 듣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오후에 딸과 손주들이 온다고 했으니 오면 보여줘야지, 잘 챙겨서 병실로 돌아온다.


점심시간이지만 신체활동이 없으니 입맛이 영 없다. 닭다리 삼계탕이 나왔는데 몇술 뜨다 말았다.

미술보다는 신체활동 수업을 오전에 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따 회진 시간에 건의해볼 참이다.

딸은 나를 보러 올 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내가 죽었냐, 왜 우냐고 소리치지만 사실 나도 눈물을 참고 있는 거다. 돌이켜보면 꼬물거리던 손주들을 봐줄 때만 해도 한창이었다. 그땐 내가 할머니라니, 믿을 수가 없었는데..... 그 손주들이 벌써 취업을 했단다.

취업도 기특하지만 딸을 따라 여기까지 나를 보러 와준 게 감동이다.

우는 딸을 달래고 딸이 가져온 단팥빵과 떡 케이크를 요양보호사에게 건넸다.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같이 나누어먹자고 했다.


- 우리 아들 며느리는 바빠서 못 와.

우리 아들이 변호사고 며느리는 학교 선생인데 퇴직이나 해야 오지, 얼마나 바쁜지 몰라.


저 사람은 꼭 저런 식이다. 옆옆 침대에서 지내는 알츠하이머 환자인데,

나이가 나보다 서너살은 많게 보이는 걸 보면 자식들은 이미 퇴직했을 것 같지만

하루의 절반은 꿈 속을 헤매는 듯하다.

나머지 사람들과 요양보호사들은 내게 딸이 참 사근사근하고, 손주들 인물이 훤칠하다며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는데 유독 저 사람만 속이 꼬였다.


- 나는 유기농 밀가루 아니면 못 먹어.

우리 며느리는 나 먹으라고 사는 빵은 항상 유기농 밀가루로 만드는 빵집에서만 사오거든.


결국 그녀는 빵을 거부했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어딜가도 저런 타입이 있다는 게 이젠 신기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모난 부분도 동글동글해지던데

저렇게 꼿꼿이 모난 채 나이를 먹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을까.

참 예뻤을 얼굴인데 구십이 넘은 나이에도 눈썹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다.

안쓰러운 사람.


저녁 전엔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식사를 하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딸 덕분에 하루가 금방 갔다.

참, 아들은 주말에 온다고 했는데... 생각하는데 마침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 내 새끼.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는데,


- 죄송해요. 주말에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어요.

다음 주말에 갈게요.


목소리가 영 힘이 없는 게 신경쓰인다.

이번 주말이든 다음 주말이든 상관 없지, 뭐. 목소리가 왜 그러냐 물어보니 감기 기운이 있다고만 한다.

전화를 끊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만다.

사나흘에 한번씩 전화해서 내 안부를 물어보는 며느리,

굳이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고 싶지는 않다.


밖은 깜깜해졌지만,

병실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불은 꺼졌지만 수시로 요양보호사들이 드나들며 기저귀를 체크하고,

섬망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끙끙 앓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푹 자기는 글렀다.

하긴 푹 자도 과거의 기억들이 뒤죽박죽 되어,

지나간 인연들이 한데 모이는 희안한 꿈이나 꾸니 차라리 꿈꾸지 않고 잠을 설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의 목소리가 좋지 않은 게 혹시 부부싸움을 한 건 아닐까?

월 이백이 훌쩍 넘는 요양비는, 내가 가진 돈을 다 소진한 몇년 전부터 아들이 전액 부담하고 있다.

딸보다 자기네가 살림이 낫다는 이유인데

며느리가 그걸 언제까지 용납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곧 애들 결혼시키려면 목돈도 필요할텐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오늘도 어제 같았고 내일도 오늘 같을 지긋지긋한 요양병동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기약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도 남편도 친구들도 없이,

자식들에게는 짐만 되는 이런 생활을 굳이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관절이 또 쑤시기 시작한다.

변비 때문인지 아릿한 복통도 종일 지속된다.

옆옆 침대 저 여편네는 또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요양보호사를 쥐 잡듯이 잡고 있다.


어쩌면 이 곳이 지옥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잠에 들었나보다.



다시 밝은 아침,

폰을 보니 벌써 여덟시다. 얼른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알람을 일곱시 오십분에 맞췄던 거 같은데 못 듣고 계속 잔 건지, 십분이나 늦게 깨버렸다.

꿈에서 깨어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한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다.

천근만근,

누가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던 꿈속 노년의 몸뚱이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여긴 요양병원이 아닌, 우리집.

나는 구십대 노인이 아닌 마흔살 워킹맘.


꾸역꾸역 일어나 애들을 깨워놓고, 계란프라이를 한다.

남편은 먼저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출근차림으로 애들 간식을 준비한다.

아침은 간장계란밥, 간식은 감자빵과 두유.

바로 먹을 수 있게 챙겨두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서, 전철역에서 각자의 회사로 향했다.

피곤하지만 금요일,

내일은 주말이다. 주말에도 쉴 수는 없지만 햇살 가득한 봄날, 볕을 만끽하러 어디든 다녀올 생각이다.


생생한 몸과 마음으로,

찬란한 볕을 만끽할 수 있는 봄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지난 마흔번 남짓의 봄날들은 그저 흘려보냈다.

봄이 봄인 줄 몰랐다.

지나간 후, 그 때 참 좋았다는 회상은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봄날들은 기꺼이 즐겨야지.


아깝다는 아쉬운 마음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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