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
비가 내린다.
마음이 불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나를 돌아본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이토록 불안한지 곰곰히 들여다보는 오후다.
몇 시간 전에 직장에서 타 부서 동료 P가 컴퓨터용 사인펜을 찾고 다녔다.
내 자리 근처까지 왔고 마침 나에겐 컴퓨터용 사인펜이 있었다.
대충 반년쯤 전에 자격 시험을 준비하며 샀던 건데, 당시 시험에서 딱 한번 쓰고 필통에 처박아둔 거였다.
P는 여기저기 컴퓨터용 사인펜을 구걸하고 다녔지만
주변 누구도 컴퓨터용 사인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보통 나는 이럴 때 그냥 모른 척을 한다.
그런데 P는 업무에 굉장히 협조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받은 기억만 두어번은 된다.
- 저 있어요.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나는 내 컴퓨터용 사인펜을 P에게 건넸고, P는 엄청 고마워하며 사라졌다.
조퇴하고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갈 예정이라 했다.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한 마음도 잠시,
나의 마음에는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번뇌가 일기 시작한다.
- 무슨 시험일까? 중요한 시험일 것 같은데......
- 컴퓨터용 사인펜 반년이나 필통에 처박아뒀던 건데 잉크가 말랐으면 어쩌지?
- 잉크가 마르지 않았더라도 OMR 인식이 되지 않으면 어쩌지?
- 그 원망이 나에게 올텐데!
- 지금이라도 가서 그거 좀 오래된 거니까 다시 달라고 할까?
- 이상해보이겠지.
- 아니면 가서 그거 오래 필통에 묵혔던 거라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해보고 가져가시라고 하자.
- 근데 제대로 나오긴 해도 잉크 OMR 인식 효력이 있는지는 어떻게 확인하지?
대충 이런 식이다.
머릿속에서 이미 P는 가까운 미래에, 나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며 나의 멱살까지 잡았다.
그리고 내게 중요한 시험의 당락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라며 소송을 제기한다.
결국 나는 오후 내내 일하며 그 소송에 대비한다.
- 해당 컴퓨터용 사인펜은 반년전쯤 제가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잘 나왔고 인식이 되었으며, P가 컴퓨터용 사인펜을 찾아 헤맬 때 도움이 되고자 선의로 빌려주었을 뿐이라 ㅣㅏㅓ비ㅓㅏㅣㅁㅇ너ㅏㅣ러ㅣㅏㅁ너아리
생각을 멈추고 싶은데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는다.
적토마, 폭주기관차, 불도저처럼 비합리적 생각들이 곤두박질을 친다.
곰곰이 생각하면 근본적 원인은 "불안" 인데 그걸 다스리는 게 영 쉽지가 않다.
한동안 정신과 약도 먹어봤지만 그때 뿐이고,
약에 의존하는 느낌이 싫어 약을 끊고 대추차, 마그네슘 등을 먹어봤지만 크게 효과를 보진 못했다.
결국 항상 불안하고, 불안하니 이런 저런 걱정들을 하고 걱정을 없애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대책을 세우고 그 짓을 무한 반복하며, 나의 소중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늘 피곤하다.
걱정이 없으면 하이에나처럼 걱정을 찾아 헤맨다.
미친 사람처럼 휙휙, 동서남북을 샅샅이 뒤져 걱정거리를 찾아내고 또 불안해하며 대책을 세우는 거다.
오늘은 컴퓨터용 사인펜이었고,
어제는 통신사에서 걸려온 홍보 전화였다. 업무 중에 전화가 와서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근데 끊고 나니 통신사 직원이면 나의 집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모두 알텐데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또 걱정이 몰려왔다. 미친다, 정말.
어떤 날은 십년도 훨씬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 생각을 한다.
아련하게 떠올리는 게 아니라,
걔가 어릴 적 나의 수치스러웠던 기억들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는 상상을 한다.
혹시 근처 동네에 사는 건 아닐까,
마트에 갔다가 마주치면 어떡하지? 학부형으로 마주치면 어떡하지? 거래처 사람으로 우연히 만나면 어쩌지?
아니면 요즘 워낙 sns 가 발달되어 있으니까,
또 걔는 컴퓨터를 잘 했으니까 어떻게든 찾고자 하면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평온한 나의 현재를 방해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갑자기 너무 겁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평온'한 나의 현재,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인데 왜 나의 머릿속에서는 저런 터무니없는 걱정들이 이어지는 걸까?
행복하고 싶은데,
눈 앞의 행복에 집중하고 싶은데.
이렇게 살얼음판 걷듯 살아야 되나 싶다. 이게 틀린 삶의 방식이라는 건 잘 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불안은 걱정을 일으키고, 걱정이 지나친 방어로 이어지고, 타인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비호감을 산다.
누가 나에게 해를 끼칠까봐 대부분의 교류를 차단하고,
사소한 마음도 타인에게 내어주지 않으려 하니 매사 비협조적이 될 수밖에 없고,
비협조적이지만 미움을 받기 싫다보니 말이 많아지고,
말에서 실수가 생기고, 되려 더 비호감이 되어 소소한 충돌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반대로 불안을 타파하고 걱정을 줄이면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그러면 타인도 내게 협조적이 되니
자잘한 일들이 크게 불어나지 않고 이해와 배려로 쉽게 굴러갈 수 있다.
안다.
머리로는 잘 아는 일이다.
실천이 어려울 뿐.
예컨대 '약간'의 책임을 동반하는 업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책임 소재가 있으니 당연히 해당 업무는 모두가 기피한다. 그래서 그 업무로 H라는 사람과 업무 핑퐁문제가 불거졌다고 생각해보자.
H는 상사일 수도 있고, 부하직원일 수도 있고, 타 부서 동료일 수도 있다.
불안하고 걱정 많은 성격의 나는 어떻게든 그 업무를 피하고자 발버둥을 친다. 추후 신경 쓸 여지 자체를 두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니 일단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못해요' 혹은 '안해요'를 시전해본다.
그러면 H라는 사람은 당연히 나를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면 해당 업무를 그냥 본인이 하겠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해당 업무를 내게 넘기려고 할 것이다.
선자의 경우라면 나는 H에게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추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빠져나갈 구실이 없어진다. 어느 한쪽만 계속 양보하는 경우는 없다.
지난 번에 H가 한발 물러섰으니 이번엔 내 차례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일은 '약간' 이 아닌 훨씬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는 업무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렇게 싸우는 과정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주고 받는 표현들에서 상처를 주고 받게 될 수밖에 없고,
오히려 그런 표현들이 문제가 되어 H가 상사라면 인사고과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H가 부하직원이라면 갑질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
종국에 가서 H가 해당 업무를 하든 내가 그 업무를 하든, 결과는 선자의 경우와 똑같다.
불필요한 싸움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만 쓰여질 뿐.
결국 지나친 불안으로
즐비한 돌무리들을 피하려고만 들다 보면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거다.
잃는 것만 있다,
돌무리를 피하려고 용을 쓰는 에너지.
스트레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원서를 쓰는데
담임선생님이 원서에 도장을 삐뚤게 찍어준 적이 있다.
나의 불안은 이미 그 삐뚤어진 도장으로 대학에 떨어지고, 없는 형편에 재수하고, 입시에 실패하고, 인생 조지는 결론까지 갔던 것 같다.
- 원서 다시 작성해올게요, 선생님.
- 도장 다시 찍어주세요, 선생님.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 너 도장 찍은 거 때문에 대학 떨어지면 내가 책임질게.
나도 지지 않았다.
- 선생님 어떻게 책임지시려고요?
원서 접수 기한이 있고 어쨌든 결과 나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결국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윤성아, 너 그거 병이다. 마음 편하게 가져라.
결국 도장은 다시 받지 못했고 대학은 합격했지만 합격 소식을 들을 때까지 내 머릿속에서는 삐뚤어진 도장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다. 계속 불안에 떨었던 거다.
정말 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요즈음도 그렇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이어지지만 여전히 나는 하이에나처럼 신경쓸 일을 찾아 헤맨다. 걱정이 없어 걱정이랄까.
아무 일도 없으면 옆자리 동료의 숨쉬는 소리까지 거슬리고 만다. 그조차 없으면 과거 어느 시점, 나의 과오들을 끄집어 내어 그것들이 현재를 망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앞선 고3때 선생님의 말씀대로 병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정확한 병명이 있겠지만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는 그저 '우울 에피소드' 정도로만 나왔고,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자 평소 걱정과 불안으로 소모한 에너지를 보충이라도 하듯 몇날 며칠 잠이 쏟아졌다.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글로 이렇게 마음을 써내려 가는 게 약보다 효과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벌써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어느덧 컴퓨터용 사인펜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정신이 들고 쓸모 없는 생각들을 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
걱정은 아무 힘이 없다.
한때는 작가가 되어 수억을 버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돈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글로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어쩌면 극적인 성공을 거두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어릴 적 욕심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 과정이 아닐까?
핑크빛 꿈을 하나둘씩 포기하고,
일상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재벌집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욕심.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와 결혼하고 싶었던 욕심.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었던 욕심,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던 욕심.
그리고 억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욕심까지,
이제는 내려놓는다.
글을 써서 조금이나마 불안이 해소되고,
나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불안과 걱정으로 현재의 행복을 잠식당하고 싶지 않다.
그저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