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쏘울메이트 태그가 달린 게시물들이 종종 있다. 주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친구가 없다. 직장 동료야 늘 있고, 동네에서 오며가며 인사하고 가끔 브런치나 하는 애들 친구 엄마들이야 있지만 ‘친구’는 없다. 당연히 쏘울메이트도 없고, 쏘울메이트라 부를만한 사람을 살면서 만나본 적도 없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도 나랑 취향은 전혀 다르다. 성격도 말투도 달라서 오히려 더 끌렸던 것 같긴 한데 취미나 성향도 굉장히 다른 편이라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늘 부딪힌다. 엄마도 애들도 나랑 쏘울메이트는 전혀 아니다. 엄마랑 통화를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애들과 대화를 하면 치밀어오른다.
최근에는 정말 존경하던 직장상사가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랑 너무 달라서 놀랐다. 그 분은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끝내는, 너무나 멋져서 닮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자녀 이야기를 하자 완전히 돌변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소위 ‘맘충’이라 불리는 집단의 행태들을 당연한 듯 여기는 태도에 굉장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또 작년 이맘때는 알고 지낸 지 5년이 넘었고, 만날 때마다 즐거워 평생 갈 인연일 줄로만 알았던 친구 두 명에게 손절 당했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터진 것 같았다. 눈치 없고 이기적인 나는 전혀 몰랐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날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고 한번도 그 마음을 의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굴 만나도 시절인연이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건 마치 결혼 전 주말마다 소개팅을 할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던 그런 막막하고 갑갑했던 마음. 그럼에도 남편을 만났으니 어쩌면 환갑 즈음에는 쏘울메이트도 만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마음이 잘 맞고,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고, 형편도 비슷하고 취미도, 성격도 비슷한 그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십대때도 이십대때도 삼십대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손절하며 이제 기대는 거의 남지 않았다. 나의 쏘울메이트는 아마도 영원히 나 뿐일 거 같다.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아주고, 나의 이야기는 내가 가장 공감한다. 내가 가장 불쌍한 것도 나 자신이고, 내가 가장 자랑스러운 것도 나 자신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기특하게 여기는 것도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나다.
그러니 나는 늘 나를 믿고 간다. 관계에 치이거나 관계의 부재로 외로울 때도 있지만 항상 결론은 나만 믿고 가는 걸로 귀결된다. 나랑 맞는 사람을 더 이상 찾아 헤맬 열정도 없고, 노력한다고 만나지는 것고 아니고, 믿었던 인연들에게 배신당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혼자가 차라리 편하다. 타인에게 의지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만 믿고 가는 거다. 고독할지라도 안정적인 항해를 즐기며.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고, 나의 마음을 나보다 더 이해해줄 수 없다.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다. 힘들어도 나만큼 힘든 사람은 없고 기쁠 때 나만큼 기뻐해줄 타인은 확실히 없으므로.
쏘울메이트를 만나는 법은 어쩌면 이런 포기의 과정이 아닐까? 무수한 인간관계들의 실패 속에서 결국 나만 믿게 되는 과정 말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나의 쏘울메이트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버려지고 상처받는 게 어쩌면 애초부터 정해진 경로가 아니었을지. 그 정답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고독하지만 누구보다 안정적인 쏘울메이트를 만나는 방법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마흔번도 훌쩍 넘게, 찬란한 봄을 보내며,
나는 오늘도 나를 믿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