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터지는 데 이유가 있을까

흐림

by 윤성

나는 예전에 길을 걷다가 정말 그냥 맞은 적이 있다.

대낮의 신촌 거리를 걷던 중이었는데

지나가던 어떤 여자가 갑자기 내 머리를 퍽 소리나게 때렸다.

그러고 또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스물다섯의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어린 나이에 맞아서 아픈 것보다 너무나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주변 사람들의 !! 놀라서 웅성거리던 소리와

당황해서 가빠졌던 나의 숨 소리가 생생하다.

뜨거운 볕 때문에 어지러워

순간 내가 꿈을 꾼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너무 덥고 어지러워서 잠깐 미친 건가,

착각을 한 건가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 여자는 나를 왜 갑자기 때렸을까?

자기 남편이랑 바람난 여자가 나처럼 생기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지, 그럼 머리끄댕이를 잡고 뭔가 더 말이 있었겠지?

혹시 서로 스쳐 지나는 순간

그녀에게 잠시 머문 나의 눈빛이 사나웠을까?

너무 햇볕이 뜨거워서 어질어질 걸었던 기억 뿐인데...

것도 아니면 그저 그 시절 신촌 거리에 즐비하던

도를 믿으십니까, 종교인이었을까?

글쎄, 그들은 보통 웃으며 접근해서 내 눈빛이 맑다고 했으니

것도 아니다.

아니면 자신이 믿는 어떤 신으로부터 신촌 길바닥을 멍하니 걷는 멍청한 여자의

머리통을 후려 갈겨야 복을 받는다는 지령이라도 받은 건지,

그저 내가 눈빛이 멍하니 만만해보이니 기분 나빴던 어떤 일을 잊으려고

내 머리통을 후려 갈긴건지,

이도저도 아닌 그저 단순히 미친 여자였던 건지.


뜨거운 길바닥에서

머리통을 후려 맞은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울지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척,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다시 원래대로 걸었다.


그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머리통을 맞은 일은

벌써 15년이 넘게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한번씩 생각이 난다.

비슷한 풍경만 마주해도,

걷던 길에 조금만 사람이 많아져도,

ptsd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 땀이 나고, 토할 것도 같고,

주변을 지나는 비슷한 모습의 여자들을

경계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옛날 내 머리를 때렸던 여자와

옷도 머리 모양도 비슷한 여자가 서 있었다.

사실 흔한 아줌마다,

길에서 하루에도 열댓명은 볼 듯한 평범한 아줌마.


차라리 그 아줌마가 생긴 게 좀 특이했으면

내가 덜 자주 심장이 두근거릴텐데

하필 평범한 아줌마라 이렇게 자주 마음이 힘들다.




살면서 얻어터지는 데 과연 이유가 있을까?

내가 먼저 때려서 얻어터지는 건 제외다,

그건 내가 때려서 맞은 거니까 당연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내가 먼저 때린 게 아닌데도 이유도 모른 채 얻어터지는 일들이 무수하다.


학교 다닐 때

괜히 기분이 나쁘다고 누구 하나를 일으켜 세워 뺨을 후려치던 선생이 있었다.

님을 붙이기 싫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선생들의 기분까지,

그 선생이 혹시 전날 부부싸움을 했거나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닌지 까지 눈치를 봐야했다.

두들겨맞지 않으려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누군가는 이유 없이 나를 모함했고 비난했다.

평소대로 일을 처리해도 어떤 날은 나의 의지, 의도, 노력과 관계 없이 꼬이고 꼬여

질책 받아야 했다.


운전을 할 때도

차도 나의 마음도 괜히 긁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그냥 마트에 가도, 엘레베이터를 타도, 운동을 하러 가도 나는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노려보거나 비키라고 하거나 괜히 내 몸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부동산에 집을 알아보러 갔다가 괜한 시비를 당하기도 하고

식당에 갔다가 별로 보고 싶지 않는 광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예컨대 옆 테이블에서 심한 애정행각하는 걸 본다거나 애 똥 기저귀 가는 걸 본다거나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신촌 길바닥에서 머리를 갑자기 후들겨 맞은 것처럼

나에겐 상처가 된다.

물리적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게 아니더라도 나는 분명 얻어터진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신촌 길바닥에서 갑자기 내 머리를 후려친 그 여자의 마음을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처럼......

아무리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해봐도

내 말투에 문제가 있을까

내가 너무 만만하고 멍청하게 생긴 걸까 돌이켜봐도 그런 게 그냥 얻어터지는 이유가 되진 않는 것 같다.

오랜 세월 나에게서 내가 얻어터지는 이유를 찾다가

어느 순간 상대에게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자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의 어떤 이유로 내가 왜 영문도 모른 채 얻어터져야 하지? 싶은 분노.


어떤 날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어떤 날은 펑펑 울기도 어떤 날은 상대 머리채를 잡고 광장에서 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세상을 둘러보니

나만 그렇게 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했지만 소송에 휘말려 몇 년째 고생 중인 사람을 안다.

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분 상해 죄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자기 기분이 상했다고 다른 사람을 저렇게까지 두들겨패는 건 그야말로 악마인 것 같다.

더한 경우도 많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조차 아픈 일들.




그러니 제목에 대한 대답은

없다, 가 정답이라고 본다.


누구도 얻어터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유 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에 그저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다만 내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두들겨패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두들겨패며 살아왔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내 기분이 나빠서,

내가 사는 게 고되어서 그 분을 남에게 푼 적이 많았는데 그건 사실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더 조심히 살아야겠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개미를 밟아죽이듯,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손에 누군가 얻어터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얻어터지는 데 이유는 없다.

그러니 남을 두들겨패며 살고 있지 않다면

당당해도 된다.

머리통 한번 맞았다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울 필요도 없다.

머리 한대 맞은 정도야,

피가 나는 것도 아닌데 괜찮다.

그저 더러운 손길을 털어내고, 걷던 길 마저 걸어가면 그만이다.


다들 그렇게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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