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
불안이 두렵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이
평생 나를 괴롭히는데
이제는 불안 그 자체가 두렵다
내가 불안할까봐 두려워
어릴 때는 아빠가 소리 지르고 때릴까봐 두려웠다
고등학교 때는 자주 다니던 길에서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는데
이후 지하철을 탈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심할 때는 식은 땀이 나고
더 심할 때는 내릴 곳이 아니라도 내려서 숨을 고른다
대학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도서관에서 기숙사를 향하던 길에서
어떤 학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저녁 늦은 시간만 되어도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자취하던 시절에는
집앞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어오던 길에
어떤 남자가 모자로 얼굴을 푹 가리고 쫓아왔다
나와 그 남자의 걸음이
함께 점점 빨라지다가
자취방 공동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달려서 계단을 올랐는데
공동현관 잠금 장치가 저절로 달칵 잠기는 순간
그 남자가 현관 유리문으로 달려들어 거칠게 열려고 했다
그리고 잠긴 걸 확인하더니 시발, 거리며 가버렸드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잡혔다
무섭고 슬픈 소식들을 접할 때면
너무 마음이 아파 며칠이고 몇주고 기분이 다스려지질 않는다
불안니 심해지면 비합리적 신념에 사로잡혀
집밖으로 아니 이불 밖으로도 못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불 속에 있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임신했을 때
옆 자리에서 일하던 직장동료가 난임이었다
배가 불러올수록 그녀의 눈치가 보였고
질투해서 해코지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구체적인 꿈으로까지 이어져 괴로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내 마음은 두렵고 불안해 요동쳤다
눈치가 없는 건지
날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듣고서야
아 저 사람들이 나를 싫어했구나, 깨달은 적도 많았고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내가 했던 말들로
남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결국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신경 안정제를 먹어도 그 때 뿐이고
잠이 쏟아지니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힘이 들어
내 힘으로 극복하고 싶은데
어렵다
힘든다
백화점만 가도 공기가 답답하고 숨이 가빠져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고
영화관을 가도
누가 칼이라도 들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 불만 있는 미친 인간이 이 중에 있지는 않을까
뭔 일이 날까봐 너무 두렵다
공황증상인 거 같은데
공황장애까지는 아닌 건
겉으로 나는 멀쩡해보인다는 거다
심장이 쿵쾅거려도 참는다
침을 삼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추고 참으며
웃는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멀쩡해보이도록
그러니 그러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녹초 상태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봐도 10분을 못 넘기고
누워서 잠들어버리는 그런 상태
물론 잠도 자주 깬다
아파트 바닥이 땅이 아니라
여러 층이 쌓인 공간이라는 것조차 날 불안하게 한다
직장에서는
내가 한 말이 어떻게 들릴까 수십번 고민하고
나 때문에 저 사람이 기분 나빠서
나를 모함하거나 공격하면 어떡하지, 항상 불안하다
겉으로 나는 웃고
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나의 속은
새까맣게 썩었다가 조금 나아졌다가 또 썩고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누가 나를 음해할까봐
그 누구의 인스타그램을
카카오톡 프로필을
그 누구의 행적들을 쫓고 분석한다
그들은 내가 그러는 줄도 모르고 행복하게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데
나만 이토록 비정상이다
어떤 날은 가만히 늙어가는 아빠가 치매라도 걸려
나나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지,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학창 시절 친구가 내게 받은 상처를 가슴에 담아뒀다가
이제 나타나서 복수하면 어떡하지,
직장에서 내가 처리하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
이렇게 저렇게 꼬여서
나의 책임이 되면 어떡하지 싶은 별의 별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불안하다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는 게 이상하고 불안하다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이런 글은
누가 읽어도 그 정도면 병원에 가보라 하겠지만
나는 일상 생활을
겉보기에 아주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웃으며 지내고 있다
그러려고 속으로 불안을 다스리고
안간 힘을 쓰느라 마음이 힘들 뿐이다
매 순간 긴장하니
짜증이 늘고 몸이 지칠 뿐이다
정말 어쩌면 좋을까
약을 다시 먹어야 할까
아니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불안을 다스리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나아질까
나아지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