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지친 퇴근길
몸만큼 무거운 차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집으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좁은 골목길이다
앞에 길을 막고 걸어가는 사람이 보인다
누구랑 통화를 하는지
귀에 폰을 대고 뭐라 뭐라 이야기를 쏟아낸다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차가 바로 뒤까지 온 줄도 모른다
아니면 알고도 길을 막고 걷는 건지
나는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느낀다
피곤해 죽겠는데
빨리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퍼질러 앉아 저녁 먹고 쉬고 싶은데
왜 길을 막고 난리야
부글부글 광광
치밀어오르는 짜증으로 차 안에서 혼자 광광 대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경적을 울린다
빵빵- 빠아아앙-
하지만
빠앙! 경적을 울리는 순간부터 후회가 시작된다
이전까지 짜증만 났다면
이제 짜증과 후회와 내가 너무 별로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괴감까지 밀려온다
아이 학원 픽업이라든가
시간 맞춰 신청해야 할 문화센터 강좌가 있었다든가
반품 택배를 택배 기사 아저씨가 가지러 온다든가 해서
정말 10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하는 거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내가 얼른 쉬고 싶다는 이유였으니까
굳이 10초 빨리 쉬고 싶다는 이유였으니까
빠앙! 울리면서부터 후회하기 시작할 걸
왜 참지 못했을까 싶은 거다
그 사람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내게 눈을 흘긴다
눈을 흘기면서 옆으로 비켜선다
천천히 그 옆을 지나는 내내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내 인성이 너무 별로인 것 같아 수치심이 든다
사소한 순간이지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삶을 이룬다
사흘 전에는 브런치에서 누군가 나를 구독한 걸 보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그 구독자가 이틀만에 구독 취소를 한 걸 발견하고 늦은 밤까지 기분이 침체되었다
참 사소한 순간들이다
사소한 순간들에 의해 기분이 좌우되고 그 기분이 삶을 채운다
정말 사소하기 그지없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그게 전부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으면
삶의 사소한 순간들부터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빠앙! 경적은 참는 편이 좋았다
뒤뚱뒤뚱 느릿느릿한 사람이 길을 막더라도
짜증이 나더라도
굳이 빵- 경적을 울려
짜증에다가 후회랑 자괴감이랑 수치심까지 더할 필요는 없다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는 누군가를
굳이 경계하며 흘겨보면 내 얼굴에 팔자주름만 더 깊어진다
내 눈빛이 더러워진다
그러니 아주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눈빛을 실어보내는 연습을 한다
단 몇 초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살짝 웃으며 상대를 쳐다보면
날선 눈빛으로 나를 보던 상대의 눈빛도 느슨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그 순간 행복하다
사소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하나 더해진다
좁은 골목길
앞에서 통화하며 길을 걷는 사람이 나의 휴식 10초를 침범하더라도
조금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가주는 연습을 한다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서
뒤에 차가 오는 걸 깨달은 사람은 멋쩍게 웃으며 비켜설 것이다
그럴 때 살짝 웃으며 그 옆을 지나칠 수 있는 여유,
살짝 고개 숙여 길을 비켜준 것에 대한 감사를 내색할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얼마나 행복할까
마트 계산대를 향할 때
누군가 내 앞으로 치고 들어오려고 하더라도
웃으며
먼저 서세요^^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이 몸을 밀치고 눈을 흘기며 싸우지 않고 말이다
더는 사납게 살고 싶지 않다
사는 게 힘들어 한껏 날을 세우고 살았다
내가 쏜 화살들은 훨씬 더 많은 수의 화살이 되어 나의 마음을 관통했다
그럼 또 한껏 고통스러워하며 하루하루 살아왔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
버스에 오를 때면 굳이 내가 먼저 타려 날을 세우지 않고
옆 사람이 먼저 타도록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대세에 지장이 없는 사소한 부탁을 쭈뼛쭈뼛 눈치 보며 하면
환하게 웃으며 그 부탁을 들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괜한 심술로 그에게 무안을 주고 싶지 않다
누가 차선을 바꾸고 싶어하면 기꺼이 양보하고
그렇게 양보하여 신호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더라도
열 올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이 계산이 조금 서툴러도
웃으며 천천히 하시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재밌게 읽은 글에는 좋다고 표시하고
기대가 되는 작가는 깊은 생각 없이 구독도 하고 싶다
시샘하지 않고
열등감 따위 가지지 않고
사실 다 내가 받았던 것들이다
받아놓고 받은 건 다 잊어버리고 살았다
한껏 어깨에 긴장을 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눈에 힘을 주고 살아왔다
그러느라 생긴 주름을 펴느라 또 보톡스를 맞고
또 주름이 생기도록 인상을 쓰고 살아 6개월이 지나면 보톡스를 맞으러가고
그렇게 어리석게 살았다
부드러운 노화는 아름답다
잔뜩 날을 세운 노화는 추하기 그지없다
보톡스로도 사실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100원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늘 화가 난 상태로 전투하고
그 화를 내느라 생긴 주름을 펴려고 피부과에 가서 100만원씩 쓰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바보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고 인상 좋은 할머니로 늙기 위해
사소한 순간들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어색한 긴장을 푸는 미소,
불편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쉽게 끓어 넘치지 않을 단단한 마음으로 내 삶의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사소한 행복들이 폭포가 되어
내 삶의 연못으로 쏟아지길 바란다
햇살 찬란한 무지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