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몽

흐림

by 윤성

꿈은 이루어진다?

아니,

꿈은 보통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어진 꿈이 눈에 잘 뜨일 뿐



나의 할머니는 텃밭이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다

텃밭에 유기농으로 상추도 키우고 고추도 키우고 깻잎도 키우고 싶어했다

주말이면 손주들을 불러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하나씩 두르게 하고

상추도 고추도 깻잎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따게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18평대 낡은 아파트 현관에서

홀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발견된

외로운 죽음이었다


나의 아빠는

사업을 성공시켜 나를 대학원에 진학시키고 싶어했다

취업보다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박사까지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잘 알았다

사업의 끝자락,

아빠는 마지막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취업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불안하지만 간절한 미소였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않았고

아빠는 이미 할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어 집을 지키고 있다

내가 나고 자란 낡은 주택에서

고장난 보일러를 고치며

눅눅해진 벽지를 뜯어내고 색이 맞지 않는 종이를 사다 붙이며......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꿈도 이뤄지지 않았고

그런 엄마를 조수석에 앉히고

전국 유명한 식당들을 다니고 싶어했던 외할아버지의 꿈 또한 이뤄지지 못했고


나랑 같은 대학에 다니고 싶어하던 고등학교 친구 연주의 꿈도

띠동갑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어하던 대학 동기 지희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는 걸 가까이서 지켜봤다


나는 물론 작가를 꿈꿨다

꽤 오래 원했다

어릴 때야 물론이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퇴근하면 작가 교육원에 가서 늦은 밤까지 글을 썼다

육아를 하면서도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쓰고 또 써내려갔다


하지만 작가가 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

아이들을 키우며 돈을 벌기에 알맞은 직업

그래서 쉬이 그만둘 수도 없는, 안정적인 직업

누군가는 부러워할 지도 모르겠다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 깊이 푹 집어넣고

한 손으로 그걸 꼭 쥔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망하는 걸 목표로 어떤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사업 실패로 일가족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고

응원하던 팀이 축구 경기에서 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조카들은 꿈꾸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한다


난임 부부는 임신이 어렵고

준비가 되지 않은 어느 커플은 갑작스런 임신 소식을 접하고


자녀들이 찾아오길 기다리던 노인은

요양원에서 쓸쓸히 시들고

자녀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던 불치병 환자도

병원에서 쓸쓸히 시든다


어쩌면 세상은 이루지 못한 꿈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침체된다


0.00001 퍼센트의 가능성을 보고 노력하는,

결국 0.00001 퍼센트에 들지 못할

99.99999 퍼센트의 사람들


차라리 꿈이란 게 없다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꿈,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꿈을 꾸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욕심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누구나 현재보다 더 나은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다

현재가 시궁창 같아도

현재가 꽤 괜찮아도 그렇다

누구나 꿈을 꾼다

인간에게 꿈은 필수불가결한 개념이다


꿈을 꾸면서

사람들은 노력을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열심히 돈을 모은다


혹은 열심히 쓰고

열심히 만들고

열심히 연주하고 열심히 운동한다


그렇게 꿈을 꾸며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느끼며

사람들은 꿈꾸지 않을 때보다 행복할까?


...... 그런 것도 같다

꿈이 있기에

현재가 조금 더 행복한 거 같긴 하다


그렇다면

꿈이란 건 결국 이루어지든 이러우지지 않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 그런 것 같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은 현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에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는 말아야겠다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 누렇게 바라고

몇 번을 꼬깃꼬깃 접었다 폈다 해서 너덜너덜할지언정

버리지 말고 주머니에 넣어 한 손에 꼭 쥐고 살아야겠다


몇 년에 걸쳐 쓰다가

신물이 나서 한글파일 자체를 삭제할 지언정

휴지통에는 둬야겠다

영구 삭제까지 하지는 말아야겠다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휘갈겨서

누더기 같은 글들을 조각조각 여기저기 꿰메어

그 꿰맨 흔적들이 비록 아름답지 않더라도


누더기가 아니라 퀼트라 여겨야지

내 오랜 꿈의 흔적이라 여겨야지


나만 알아주는 나의 꿈이라도

그 자체로 의미는 있다


그 꿈 덕분에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난다면

주저앉은 마음을 살짝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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