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본인보다 힘든 상황의 타인들을 보며
위안받고 힘을 내는 것이
굉장히 천박한 방식의 화이팅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아줌마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싸우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남편 욕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내 남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기 남편 욕하는 여자 앞에서
내 남편은 안 그래
네 남편은 왜 그러니
나는 그런 남편이랑 못 살거 같아
..... 그럴 수 없었다
장단을 맞춰주느라 대충 나도 내 남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면
어느새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동네 아줌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명품을 휘감고 나왔다
목걸이, 반지, 가방, 구두까지 모조리 명품들
나랑 너무 취향이 다른데
꾸역꾸역 만나자고 조르고는 저러고 차려입고 나와서
남편 사업이 잘 된다는 자랑만 늘어놓다 집으로 갔다
나는 직장에 다니니 늘 수수하게 나갔는데
그런 나를 보며 전업주부인 그녀는 스스로 힘을 냈던 거 같다
왜 그렇게 느꼈냐면
언젠가 퇴근길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날따라 프로젝트 발표가 있어 정장에 구두 차림인 나를 보더니 이런 스타일도 입어?^^ 하고는 이후 만나자는 연락이 뚝 끊겼지 때문이다
드라마도 주인공이 곤경에 처해야 시청률이 높다
오징어게임만 봐도 그렇다
남들이 피똥싸며 죽을똥살똥 게임하는 걸 보면서
시청자들은 스릴을 느낀다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는 먹히지만
금수저 집안의 자식이 별 다른 고생없이 주어진 부를 누리며 결혼도 잘 하고 자식들도 승승장구하는 스토리는 누가 보겠는가
누가 힘들다고 하면
왜? 왜 힘들어? 이야기 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 하는데
누가 행복하다고 하면
그래 축하해 로 대부분 끝이다
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의 이런 천박한 습성을 증오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잘 털어놓지 않았다
친구가 없으니 털어놓을 대상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달라진다
가만 들여다보면 만만한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겉으로 편안해보여도
자세히 보면 다들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 버린 과자 부스러기를 낑낑대며 옮기는 개미들처럼
언제 콱 밟힐까 달달 떨면서도
어디서 날아온 돌멩이에 이마를 맞아도
이유도 모른채 누군가의 무례한 말과 행동에 상처 받아도 목구멍으로 차올라오는 뜨거운 걸 삼키며
다들 매일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뜻대로 풀리는 삶은 결코 많지 않다
다 힘들다는 소리다
다들 힘이 드니까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리고 힘을 얻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증오가 녹아버렸다
타인의 고생에 열광하는 게
심술이 아니라 공감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미워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공감이었다
다들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위로받고 싶은 거였다
천박한 방식의 화이팅이라니
당치 않다
주인공이 고생하는 이야기에 끌리는 것도
나만 힘든 게 아니지? 재차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어깨동무 같은 거였다고 깨닫는 중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굳이 나만 주저앉을 이유도 없다고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미웠던 마음이 사라진다
그 자리를 연민으로 채우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