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오늘은 어쩌다보니 점심을 혼자 먹는 날이다.
혼밥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나의 의지가 아닌,
상황이 그렇게 되어 여러 무리들 틈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날이면 조금 울적하다.
이런 스스로가 못났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은 걸까,
자심감이 없는 걸까?
어릴 때부터 유독 혼자 뭔가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늘 친구들이 있긴 했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서로 집을 오가며 단짝으로 지냈던 윤주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연락이 끊겼다.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는데도 말이다.
중학교 때는 지아를 비롯한 여섯 명 정도가 친하게 지내며 놀이공원도 가고 집도 오갔지만
역시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연락이 두절되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두어번 집으로 연락이 오긴 했지만 그러고 말았다.
지아 무리와 별개로 둘이 단짝으로 지낸 아름이가 있었는데 아름이랑도 서로 집을 오가고 목욕탕도 같이 다닐 만큼 친하게 지냈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고등학교 축제에 나를 초대해 한번 갔었는데 너무 반갑게 나를 껴안아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근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가까운 친구들이 몇몇 있었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만큼 가까워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공부도 해야 하고 동네도 여기저기에서 모여 그랬을까? 그때부터 혼자 무언가 할때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소외되기 시작했다.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몰려 나갈 때, 나는 혼자였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삼삼오오 노래방이나 놀이공원으로 몰려 나갈 때, 나는 혼자 집으로 향했다.
수학여행을 가서 문화재 답사 시간에 삼삼오오 몰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혼자였다.
특별히 날 괴롭히는 무리는 없었다.
평소 학교에서 그룹으로 활동을 할 때나 급식을 먹을 때는 늘 누군가 옆에 있긴 했다. 옆에 있던 누군가와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다만 그 이상 가까이 친해지지 못했다.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놓거나 시험이 끝나고 함께 해방감을 즐기거나 풍경이 좋은 곳에서 함께 사진을 남길 친구는 없었다. 원했지만 말이다.
이후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조금 내 곁에 머물다 나를 버렸다.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넷이 친한 무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만 제외되었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못난 나는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빠진 그들의 모임을 염탐한다.
울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어떤 날은 울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 나이 먹도록 친구 하나 없으면
성격에 문제 있는 거지
어릴 땐 그 말이 맞나보다 싶어
인연을 길게 이어가려 노력이라는 걸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은근히 나를 공격하는 말들을 웃어 넘기기도 했다.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인연 챙기려다 내가 내가 아닌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결국 본성을 드러내자
노력으로 이어보려 했던 인연들은 역시나 다 떨어져나갔다.
그러다 또 외로우면 노력을 해보다가
또 때려치자, 멋대로 굴다가 사람들로부터 절교당하고
그러다 또 너무 외로우면 어설픈 노력을 해보는
그런 날들의 연속.
내 성격이 희안한가 자책을 많이 했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니
이제는 그냥 이런 팔자를 타고난 건가 싶다
과연 나의 본성을 그대로 받아 줄 인연이 있을까?
예의를 지켜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한다.
반대로 듣기 싫은 말들을 참다가 참다가 한 마디 하면
무리에서 나를 끊어내버린다.
남은 인연이 둘셋정도 있지만
이들도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걸 좋아하는 느낌이다. 나는 평소 말이 없고,
실제로 집중해서 듣든 듣지 않든 듣는 척을 아주 잘 한다. 호응도 잘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연기인데
이 옷을 벗어도 곁에 남아줄 인연이 남을지.
결국 천륜과 법으로 엮인 가족들만 남지 않을까 싶다.
그게 어때서,
싶다가도 오늘처럼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없어 혼자 꾸역꾸역 먹고 살겠다고 밥을 삼키는 날이면
서글프다.
스스로 혼밥을 하는 건 괜찮다.
큰 의미도 없는 말들을 주고 받기 싫고
입에 뭘 넣고 말해야 하니 맛있게 먹기도 불편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아 오늘은 좀 혼자 먹자, 싶은 날 혼자 밥을 먹는 건
너무나 즐겁다.
그런데 오늘처럼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정말 “같이 밥 먹자! ”라고 연락할 사람이 1도 없고
사실 입맛도 없는데
밥은 먹어야 오후에 또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혼자라도 밥을 먹자 싶어서 먹는 혼밥은
날 참 서글프게 한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잘못 살아서 이런 걸까 모르겠다.
마흔번째 봄을 넘기며
옛 어른들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종종 있다.
예컨대,
지는 게 이기는 거라던 말.
어릴 때는 저 말이 패배자의 정신승리처럼 보여 너무 싫었는데 이젠 그 뜻을 조금 알것 같다.
삶의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기에
당장의 전투에서 이겼더라도
그 승리로 잃는 게 분명히 있고 그게 당장의 승리로 얻는 것을 넘어서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두렵다.
옛 어른들 말씀에 늙을 수록 친구가 있어야 한다던데...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오면 어쩌지?
난 이미 새로 친구를 사귀기엔 늙은 거 같은데
지금 누굴 만나 마음을 나눈다고 한들
그 우정이 오래 이어질 거라는 기대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오늘 점심은 살얼은 냉모밀에 바삭한 돈까스로 정했다.
혼자니까 내 마음이다.
인스타그램 친구랑
유튜브 친구랑 깔깔 웃으며 맛있게 먹어야지.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 아니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