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작가에게 긁힌 날

흐림

by 윤성

애들과 밥을 먹다가

문득 팽이버섯의 식감을 시적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팽이버섯을 잘 먹는데

그 식감을 시적으로 표현해 창의력과 감각을 자극하고 싶었다.

애들에게 팽이버섯을 씹는 느낌을 시적으로 한번 표현해보자고 하고,

나도 회로를 돌려봤다.

애들이 감탄할만한 문장을 내놓고 싶었다.


그런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그작 아그작,

말캉말캉 같은 유치원생 수준의 표현들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Chat GPT가 떠올라 부탁을 해보았다.


팽이버섯의 식감을 시적으로 표현해줘.


사실 물어보면서도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하얀 실핏줄이 혀끝에서 춤춘다
연약한 듯 단단하게,
입 안 가득
봄비 머금은 풀잎처럼
조용히 사각이며 속삭인다


!! 세상에나.

내가 한 시간이고 몇날 며칠이고 머리를 싸맨다한들

저런 표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저렇게 자연스럽고,

어디서 본듯하지만 본적없는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Chat GPT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하나 더 드릴게요, 라며 또 하나의 글귀를 내밀었다.


은빛 실루엣, 입 속에서 풀리는 음악
아삭-
그 한 음절 속에
숲의 이슬과
고요한 새벽이 스며 있다.

!!! 세상에나 마상에나.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졌다. 완전히 긁혀버렸다.

결국 들고 있던 폰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얘들아, 이것 좀 봐.

Chat GPT는 이렇게 표현을 했네...... 멋쩍게.


어쩌면 애들의 창의력을 발굴하는 것보다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표현해보자고 머리를 쓰게 하는 것보다

CHAT GPT 활용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되는 걸까?

어떻게 질문하면 원하는 최상의 답을 들을 수 있을지

'정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되는 게 아닐까?


CHAT GPT가 코딩도 해주고

번역도 해주는 마당에 코딩이고 영어교육이고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항상 글을 쓰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늙은 작가 지망생이

갖가지 최신 트렌드를 섭렵해 이제 창작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오는 CHAT GPT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 그래도 기계는 절대 흉내내지 못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어.

- 사람의 온기가 담긴 글들은 CHAT GPT 따위가 절대 흉내낼 수 없어.


글쎄, 저런 말들도 이제 크게 와닿지 않는다.

팽이버섯의 식감을 표현한 CHAT GPT의 글귀를 읽으며 이미 그 팽이버섯이 자란 숲의 이슬과 고요한 새벽을 느꼈기에.


과연 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쓸 수야 있겠지.

60이 되어도 70이 되어도 백살 할머니가 되어도 쓸 수는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유의미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요즈음 내가 쓰는 글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

그거 뿐인 거 같다.

나는 타인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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