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향기 Aug 12. 2023

골프채와 피아노

강을 건너는 법



올해 초 남편을 따라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는 예전에 잠시 배웠는데 육아와 업무에 치여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다행인 거는 이때 골프채를 구입하지 않아 집에 골프채를 모셔 두지 않은 것이다.


올해 다시 골프를 배우면서 여전히 내 채가 아닌 연습장에 있는 연습용 채를 사용했다. 다들 본인 골프채를 쓰는지, 언제 가더라도 연습용 골프채는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린이 4개월째로 접어들자 남편이 본인 채로 쳐야 실력이 는다며 골프채를 사러 가자고 했다. 귀가 솔깃했지만 금액이 만만찮을 게 분명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 부담 없는 가격인 100만 원 이하로 구입하기로 했는데, 프로님이 너무 저렴한 걸 사면 나중에 다시 바꾸게 된다며, 200만 원 대를 추천하셨다. 허걱..


200만 원이라.. 내 생에 그리 비싼 물건을 사본 적이 없었다. 명품백을 사본 적도 없는 나였다. 부모님이 어릴 때 사주신 피아노가 있긴 하다. 언니가 일본으로 유학가게 되자 내가 외로울까 봐 사주셨는데, 우리 집 한 공간을 차지한 후론 피아노가 치기 싫어졌다. 마을에 하나 있던 피아노학원마저 폐업해 버리니 혼자 연습하는데도 한계에 부딪혔다. 누가 피아노를 연주해 보라고 하면 딴청을 부렸다. 두고 온 피아노를 가져가라고 부모님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피아노는 나에게 늘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골프채가 그 피아노처럼 될까 봐 망설여졌다. 내 물건이 되어서 나를 괴롭히는.. 그래도 이왕 골프를 시작했으니 골프채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는 얼마나 힘든 시기였던가. 이 정도도 나에게 투자를 못 하랴. 갑자기 보상심리가 불끈 솟았다. 이왕 사는 거 제대로 사자.


인터넷으로 골프채를 검색했더니,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야마하, 요넥스, 캘러웨이, 핑, 마루망, 미즈노..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지인 언니가 샀다는 매장으로 가서 매니저님이 추천하시는 제품인 야마하와 마루망으로 좁히고, 시타를 해본 후 마루망으로 최종 선택했다. 골프백과 보스턴 백까지 풀세트로 장만하고 나오는데 어색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기분이랄까!


다음 날, 골프 연습장에 새 골프채를 들고 갔다. 프로님이 골프채를 보시더니,

"왜 이거 사셨어요? 이거 별로인데. 그냥 예뻐서 산거죠? 야마하로 사시지, 그게 훨 잘 나가는데..."

'헐......' 그 입을 꽉 다물게 하고 싶었다.


그래도 내 골프채가 생기니 뿌듯했다. 왠지 공이 잘 맞는 것 같고. 소리도 어찌나 경쾌하던지. 한동안 신나게 연습장에 가게 되었다. 함께 할 벗도 있고 골프 레슨도 받고 있으니 애증의 피아노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내돈내산. 나를 위한 선물 아니던가!


비록 골프가 맞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두게 될지라도 그 경험이 평생 취미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과 가정이란 장기적인 여정이기에, 스스로를 옭아매기보다 당근 하나씩 쥐어주며 살살 달래 가며 뛰는 게 덜 힘들고 즐겁지 않겠는가.


며칠 전 사무실에 부장님 한분이 서류를 떼러 오셨다. "방학인데 웬일로 나오셨어요? 업무가 많으신가 봐요."

"아뇨, 차를 구입하려고요. 지난 학기에 고생한 나를 위해 선물하려고요."

"어떤 차요?"

"B*W요."

내 골프채가 소박하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고생했냐며 농담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시원해졌다.

그녀가 그 힘으로 다음 학기 험난한 강을 잘 건너가길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프의 세계로 들어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