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에 영 재주가 없다.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닦기, 옷 정리, 신발정리, 빨래 개기, 운동화 빨기, 냉장고 청소, 음식물 버리기..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다. 그런데 함정인 게 매일 해야 하고 모른척했다간 일 폭탄이 되어 돌아오고 어떻게든 맞닥뜨리게 된다는 게다.
그나마 살림 중에 좋아하는 건 요리다. 요리는 그래도 무언가를 생산하니까. 하나하나의 재료가 만나서 주제가 있는 요리로 재탄생하는 과정도 재밌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때 보람차고, 무엇보다 내 입이 즐거우니까.
근데 요리를 제외한 살림은 영 즐겁지가 않다. 잠시 쾌적함이란 선물을 주지만 금세 도로아미타불이다. 살림살이는 대체로 뒤치다꺼리라는 감정이 든다. 내가 소비되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살림을 하다가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억울한 감정이 쓱 하고 올라온다. '이러려고 사는걸까?' 그 감정을 날것으로 가족들에게 드러내면, '갑자기 왜? 제정신?' 이란 표정을 맞닥뜨리게 된다.
살림을 즐기는 사람이 부럽다. 한때는 살림을 잘해보려고 살림과 관련된 책과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살림 고수의 단정한 손끝에 감탄하고 그들의 정리된 살림살이에 쾌적하고 뿌듯함을 느끼지만 내 공간에 발을 들이면 처음엔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손을 놓게 된다.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좌절하기도 하고.
글벗의 글을 읽다가 살림살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나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위안이 되었다. 글로 읽으니 그 마음이 훨씬 와닿았다. 쌓인 설거지들 앞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설거지를 할 때 노래를 들으며 괴로움을 상쇄시킨다는 문구가 훅 와닿았다. 아! 나도 예전에는 설거지하면서 노래를 들었었지!!
그때부터 설거지를 할 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영상이나 노래를 듣는다. 그릇을 씻는 행위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데 집중하며 설거지 한 코스를 끝내면 글이 쓰고 싶어지고 운동하러 나갈 에너지가 생기기도 한다. 자기계발과 취향으로 살림의 고단함을 덮어버리는 효과랄까.
오늘은 설거지를 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마음에 콕 꽂이는 노래를 발견했다. 선우정아의 상상이라는 곡이다. 노랫말과 음색이 너무나 산뜻하다. 살림살이를 마주하고 어깨가 무겁고 고독했던 내 마음이 꽃을 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한동안 이 노래를 들으며 설거지의 고단함을 잊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