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 남편과 야구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다. 야구장에서의 맥주와 치킨은 맛있었지만 경기는 별로였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와 버렸다. 그 후 20년간 야구장 관람을 한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40년간 살아온 나의 고향 제주에 야구 구단이 없었으니 야구는 나의 흥미 대상이 아니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 보는 게 전부였다.
인천에 이사온지 3년차가 되던 어느 봄날, 남편 덕에 다시 야구경기를 보게 됐다. 작년 한 해 승진 시험 준비 때문에 수험생처럼 살았던 그는, 못 놀았던 한을 올 한해 풀어내고 있다. 하루는 나에게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다. 경기장이 멀지도 않고, 치맥도 먹고 싶어 따라 나섰는데,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야구장에 가서야 인천에 SSG구단이 있다는 것도, 이 팀에 내가 좋아하는 추신수 선수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야구룰은 아직 다 깨우치지 못했지만 야구를 보러 가는 길은 소풍처럼 즐거웠다.
야구경기 보러 가는 큰 재미는 간식을 먹는 것이다. 편의점 김밥도 경기장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치맥은 말해 무엇하랴.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SSG랜더스 맥주는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짜릿하게 적셔버려"라고 적힌 맥주를 마시며, "쭉쭉~ 날려버려!"라고 외치다보면, 머릿속이 가벼워진다.
날렵하게 빈틈을 가로지르는 안타와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통쾌한 홈런은 보는것도 묘미다. 정타를 맞았을 때 나오는 경쾌한 소리와 그것이 자아내는 짜릿함이 좋다. 나도 홈런 한 방은 때리고 타석을 신나게 도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기쁨에 빠져든다.
직관이 재미있는 이유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응원의 열기 때문이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다보면 어느덧 체면은 벗어던지게 된다. 앞에 앉은 모녀의 능숙한 응원 제스처에 감탄하기도 하고, 뒤에 앉은 중고생들의 열띤 응원에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경기 후반부에 핸드폰 조명을 켜고 인천의 상징인 '연안부두' 노래를 떼창할 때는 인천사람으로서 강한 연결감도 느껴진다. 고작 3년 산 게 전부지만.
야구경기 관람은 어릴 적 운동회를 떠올리게 한다. 파란하늘 아래 만국기가 휘날리던 운동장, 눈과 코를 즐겁게 하던 음식들, 청군~ 백군~ 소리치던 응원의 함성, 아이들보다 신이나 꽹과리를 두들기던 흥부자 어르신, 선생님의 스타트 총소리에 가슴 벅차게 내달리던 나. 그래서 야구 경기를 보면 나도 보르게 어린 아이가 되어 버린다. 동심의 마음으로 실컷 먹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크게 외친다.
나는 오늘도 야구장으로 향한다.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응원가 소리에 설레임이 차오른다. 간식을 먹으며 짜릿함을 느끼고, 응원을 하며 동심을 찾는다. 평온한 내 삶에 활기를 주는, 빵 터지게 하는 야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