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가을 연작시 4편

by 정하

느티나무 그림자가

오래된 길에 길게 누울 때,

나는 천천히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붙잡지 못했던 것들도,

붙잡으려다 놓친 것들도,

붙잡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들도—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줄기 숨결이었음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가을은

떠난 것과 남은 것을

가르지 않는다.

다만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을

고요히 말려줄 뿐이다.


나는

바람에 스러진 잎사귀처럼

조용히 내 안의 갈피를 넘긴다.


그러다 깨닫는다.

잃어버린 이야기들이

모두 흩어진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왔다는 것을.


그래서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내 이름을 다시 부른다.


닳아지지 않은 목소리로.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도 괜찮을 목소리로.


그저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스스로 밝혀주는 목소리로.


가을은 그제야

조용히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아무 말 없이,

다만

“이제 됐다”는 듯

서늘한 온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