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연작시 4편
느티나무 그림자가
오래된 길에 길게 누울 때,
나는 천천히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붙잡지 못했던 것들도,
붙잡으려다 놓친 것들도,
붙잡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들도—
모두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줄기 숨결이었음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가을은
떠난 것과 남은 것을
가르지 않는다.
다만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을
고요히 말려줄 뿐이다.
나는
바람에 스러진 잎사귀처럼
조용히 내 안의 갈피를 넘긴다.
그러다 깨닫는다.
잃어버린 이야기들이
모두 흩어진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왔다는 것을.
그래서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내 이름을 다시 부른다.
닳아지지 않은 목소리로.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도 괜찮을 목소리로.
그저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스스로 밝혀주는 목소리로.
가을은 그제야
조용히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아무 말 없이,
다만
“이제 됐다”는 듯
서늘한 온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