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천경마 Jun 11. 2021

앰뷸런스

우간다


간호학을 전공 중인 대학생 봉사 단원들이 UN 난민캠프 산부인과에서 삼 일간 애를 받고 돌아온 날. 고생을 치하하며 집에서 밥 해먹이고 있을 때였다 탯줄 자른 무용담을 곁들인 고기를 퍼지게 먹이고 디저트로 귀하다는 딸기에 더 귀하다는 수입산 휘핑크림을 돌리고 있었을 밤 열두 시. 진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너무 아파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우간다는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나라이므로 차분하게 그동안 모은 앰뷸런스 회사 세 곳에 전화를 걸었다 무조건 첫 번째 오는 놈을 탄다는 마음으로 따블을 외친 나에게 다행히 10분 만에 일등이 왔고 진자와 캄팔라를 한밤중에 왕복 세 시간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평균 편도 3시간 정도) 다음날 20분 뒤에 2등으로 도착한 앰뷸런스는 취소 수당을 줬고 3등 앰뷸런스는 아예 안 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2등으로 온 앰뷸런스도 돈을 줘야 다음에 온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을이다 


인턴은 병원에 가서 수속을 밟아놓고 대기를 하라고 했고 나는 현지 직원이랑 앰뷸타고 한밤중에 우간다를 달렸다 남아공을 가느냐 한국을 가느냐 무조건 살려내라 애먼 이후송 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단원이 잘못되면 당신 한국에서 나랑 꼭 보자"면서 한숨도 쉬어보고 입원 뒤에는 나름 귀한 바다 생선 구워서 한식 해다 나르면서 완쾌를 바랐고 퇴원 후에 임지 복귀가 어려워 내 집에서 며칠간을 밥 해먹이면서 지내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랬다 열정으로 과충전 되어버린 코디네이터는 냉정하게 한 발 뒤에서 절차와 규정을 곱씹기보다 내 울타리 안 식구들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한밤중에 급하게 앰뷸런스 타면 후송 서비스업체는 자기네 허락도 없이 앰뷸런스 먼저 탔다고 돈 안 준다고 다그치고 나는 또 영업담당에게 전화 걸어서 만약에 단원 잘못됐으면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이 책임지는 거냐고 진상 피우고 그랬다 아픈 단원이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면 보고 있는 사람 복장이 찢어지므로 엠알아이를 찍으러 빨리가야 하는데 그나마 병원에 엠알아이가 없어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엠알아이 전문병원에 또 앰뷸런스 타고 가서 사진을 찍는다 당시의 절차와 규정은 급한 사람 엠알아이 찍는데 허락도 안 받고 앰뷸런스 타고 갔다고 결제 안 해준다고 그랬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지금 전화받는 분 누구시냐고 한국 가면 꼭 한 번 뵙자고 나지막히 약속을 구걸했었다


이렇게 세 번을 했다 세 명 다 연락이 없다 당연하다 단원들에게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코디네이터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니까 단원이고 나고 서로가 그런 줄 알고 살았으니까 내가 단원 시절 뎅기열에 걸려 응급실에서 사경을 오고 갈 때 코디네이터들은 단 한 명도 병원에 오지 않았고 나는 그때 그게 큰 상처가 됐었다 개도국에서는 신분확인이 안 되면 입원조차 시켜주지 않는다 물조차 안 줬다 내가 코디하게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병원을 볼 때마다 생각했고 그냥 당연한 다짐 같은 게 된 거였다


난 우간다에 다녀와서 갑상선 암에 걸렸다 매년 건강검진을 하니까 너무나도 발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산재에서 인정하는 갑상선암의 주원인은 엑스레이 엠알아이를 포함한 직 간접 방사선 노출인데 병원에 너무 진하게 다녀와서 그런가 생각도 해봤지만 괘념치 않기로 했다 안 다쳤으면 그만인 거고  몸성히 왔으면 그만인 거다 너희가 아니라 내가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단원에게 코디는 단 한번 코디에게 단원은 몇 번이 될 수 있다 죽을 만큼의 최선도 결국 후회로 남는다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못난 나를 용서했다고

작가의 이전글 스리랑카 해비타트 첫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