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6
어릴 적 고향에서 보내던 명절은 꽤나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절이라서 모였는지 사람이 모여서 명절이 된 건지 모를 정도로 제사도 많았고 기념할 날들도 많았다 실향민들은 돌아가신 분 생일 아침에 생일 제사도 모셨더랬으니까 돌아가신 분이 살아생전에 제대로 못 먹었던 한풀이를 남아있는 자식들이 이런 식으로도 풀어드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세월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대 이국땅에 홀로 서 있다. 해외에서 지내느라 예비군 훈련도 제대로 못 받았고 명절날 전부치는 기름 냄새도 가물해졌다 그만큼이나 명절이 주는 의미가 전과 같지가 않다 처음 이국에서 보내는 명절이 한국에 있는 가족,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련한 애잔함이었다면 점차 설날과 추석이라는 의미는 열대지방이라서 마냥 흘러내리는 땀만큼이나 눈가에 늘어가는 주름만큼이나 희미하게 옅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람은 그게 두려운 거다 한국사람으로서 이국에 산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명절에 자기 일처럼 깊게 들어가지 못함을 의미했고 또한 우리들의 명절에는 멀리 있다는 이유로 깊이 들어가지 못함을 의미했다 기념되지 못하는 명절의 의미만큼 명절은 옅어진다 나는 여기에서도 이방인이면서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될까 봐 그게 두려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바다 건너에서 명절을 맞이했을 때를 기억한다 내가 여기에 와있는 이유가 너무나도 무색해질 만큼 그리운 이들과 통화했고 심한 유난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의 설날 두 번의 설날 세 번의 설날 타국에서의 명절이 쌓여갈수록 소중한 사람들이 기념하는 중요한 날이 나에게는 그저 또 다른 하루가 되는 날이 잦아졌다 몸이 멀게 되어 마음까지 멀게 되었다는 문장이 주는 감정이 진부함이 아니라 진실이 되었고 사실이 주는 무거움 그리고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결국은 곁가지... 한국에서도 여기에서도 나는 곁가지였던 것인가
아삭한 백도 한알, 쫄깃한 옥수수, 달콤한 포도 한 송이 멍멍하고 짖어댈 우리 집 강아지 여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