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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Jul 25. 2021

내가 겪은 버드 스트라이크

2013/01/28




호주 끝자락, 대륙의 구석쯤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당시 육 주에 한번 일주일의 유급휴가를 떠나는 조건이었다 보통은 FIFO(Fly in Fly out) 조건으로 인근 대도시 퍼스나 멀리 대도시에서 고용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고용 룰이었는데 동네에서 바로 현지채용된 나에게도 운 좋게 적용된 것으로 기억한다 육 주일을 일하면 일주일을 유급휴가를 준다. 휴가기간인 일주일 동안 급여가 나오고 심지어 떠나고 돌아오는 왕복 비행기표도 회사에서 끊어줬다 모두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복지조건에 보통은 '부럽다' '대단하다'를 연발하지만 '얼마나 근무환경이나 여건이 고되면 그럴까 고생 많았다'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경과 인종 종교를 초월한 깨달음과 유사한 가치라고 생각해봤다 나는 일주일의 천국을 기다리며 육 주일을 지옥에서 살았다


대륙의 귀퉁이 동네에서 퍼스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오분. 발리까지는 한 시간 사십오 분이었다 물가 비싸고 지루한 퍼스보다 물가 싸고 액티브한 발리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비행기표마저 공짜였으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행기는 스카이웨스트 항공사였고 PHE - DPS 노선은 무조건 왕복표를 구매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얼마전까지 일주일 한정 왕복 항공권에 풀빌라 프로모션이 단돈 500불 정도였는데 세월이 지나서 왕복표만 한 달 전에 구매해서 800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공항'이라고 하면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대표적으로 떠올리면서 어느 정도 규모가 동반된 깔끔하고 현대화된 시설을 떠올리지만 전 세계에는 우리처럼 현대적이거나 깔끔한 공항보다 우리네 동네 버스대합실 같은 공항이 많았고 동네 공항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 공항이 이름 앞에 인터내셔널이라는 수식어를 쓰게 해 주는 유일한 국제노선이 바로 토요일 일요일 운행하는 발리 노선이었는데 비행기는 내가 처음 타본 문짝에 계단 달린 비행기였다 재벌들이 탄다는 자가용 비행기 느낌. 비행기 기종은 Fokker 100 VH-FSQ으로 네덜란드 회사에서 만들었다는데 맨날 에어버스 아니면 보잉만 타고 다니던 나에게 비행기마저 생소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리 동네 공항이라지만 국제선이었기 때문에 매너 있게 출발 두 시간 전에 도착했고 비싸기로 악명 높은 시골 공항 매점에서 주전부리를 하고 여유 있게 수하물을 부쳤다 낚싯대 두 개 캐리어 하나 슬슬 보딩을 해볼까 하고 출국장으로 나왔는데 지상직 아줌마가 웃으면서 "마지막 손님이십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보통 몇 명 타는지, 누가 처음이고 마지막인지 손님에게 안 알려주는데 동네공항이라 객실 서비스도 동네공항처럼 정감 가는 느낌인 것인지 잠시 당황했었는데 비행기 타고 바로 알았다


비행기 정원이 50명 100명 뭐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기장+부기장+항공기관사+스튜어디스 둘 해서 승무원이 다섯 명이었고 일반 승객이 나까지 세명이었다 내가 혹시 자가용 제트 비행기를 타면 이런 느낌일지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스튜어디스는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다들 시큰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08시 이륙 비행기인데 사람이 다 탔다고 15분 일찍 출발하는 놀라움을 보여준 것이다 보통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공항에서 정해진 포인트에 일시 정지를 하는 식으로 딱딱 멈춰서 구간별로 활주로로 이동하고 관제사의 통제로 이륙하게 되는데 세명이 탑승한 발리행 자가용 비행기는 문짝 닫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리고 물 흐르듯 활주로로 쭉 가서 한방에 이륙했다 인테리어만 자가용 비행기 느낌이었는데 이륙까지 자가용스럽게 이륙했다

  


저가항공사도 아닌데 기내 메뉴가 무료가 아니었다 50불짜리 냈는데 잔돈 없다고 그래서 그냥 주스만 마셨다 돈 받고 파는 물건인데 잔돈이 없을 리 없다 깊은 뜻이 있겠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Skywest 항공 기내식 지금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로 합병되었다 



발리에서 행복한 시간은 생략한다


호주로 돌아오는 발리 공항에서의 체크인은 사람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보편적인 공항의 체크인이었고 일주일 동안의 휴가도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공항가는길에서부터 머릿속에는 '휴가 복귀'라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스트레스가 무한정 샘솟고 있었다 군대에서 휴가 복귀할 때 느꼈던 심근경색 전초 증상쯤의 묵직함이 가슴을 감아오고 있었다 


이 노선 자체가 발리로 놀러 오는 호주인을 위한 노선이었기 때문에 햇볓에 잘 익은 동양인이 스카이 웨스트 체크인을 한다고 하면 여권이나 티켓 체크포인트마다 보통 두세 번씩 더 행선지를 확인하고 여권 검사를 했다 범 아시아적인 나의 관상은 검게 그을린 탓에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갈 때는 사람도 한 40명은 될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정말로 꿈에서 깨어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면세점에서는 죠니워커 두병 사면 가방 준대서 술도 사고 담배도 사고 여기까지는 무척이나 무난했다   



발리에서 떠나는 게 아쉬워서 사진을 찍는 순간 이제 휴가도 끝이고 이렇게 시원한(?) 발리 날씨도 끝이구나 하는 그 순간


"퉁"


비행기 바닥에 무언가 부딪혔음을 소리와 진동으로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도 전에 조종실 문이 열리고 항공기관사가 뛰어나와서 엔진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했고 이내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운이 없게도 이륙 중에 새랑 추돌이 있었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점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발리로 돌아갑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스튜어디스도 표정이 굳어버린 상황에서 초조함이 다가왔다 핸드폰을 열고 집에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비행기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고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더 불안했던 건 스튜어디스 조차 불안한 표정으로 고객들에게 응대했다는 점이었다 이내 곧 스튜어디스도 정신을 차리고 음료를 서비스하러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안심을 시켰지만 그 고요하고 적막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착륙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느낌상 우리는 공항에서 지정해준 공역으로 이동했고 날개의 양력을 조절하는 플랫을 최대로 내리고 빙글빙글 돌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연료를 비우고 착륙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차분히 고쳐먹기로 했다 열한 시 조금 넘어서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 정도 공역을 선회하면서 연료를 소모하고 다시 발리 공항으로 돌아갔다

  

주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인스펙터들이 점검을 했다 착륙하는 순간 기내의 모든 사람들이 안도하는 한숨을 느낄 수 있었다


파란색 트랜짓 카드도 받고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도시락도 줬다 

정말 문제는 우리가 언제 돌아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는데 사람들끼리 모여서 아마 퍼스로 바로 가는 직항 편을 이용할 것 같다고 수근대기 시작했다 이 비행기는 PHE에 들어가자마자 국내선으로 변경되어 브룸 찍고 퍼스 가는 노선이었는데 근시일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답은 간단했다 점검하는 비행기 안에서 수하물 빼면 일이 커지는 거고(대체 비행기 이용) 수하물 안 빼면 일이 안 커지는 것(그 비행기 그대로 운항)이었다 그 와중에 나온 밥이 의외로 맛있었고 안내방송이 나와서 다시 그 비행기 그대로 탑승했다 

  


두 시간쯤 공항에서 기다렸고 비행기 점검을 마치고 호주로 출발했다 딜레이에 대한 보상으로 유료로 제공되는 음료가 공짜였으나 피곤해서 안 마셨다 정확히는 마실 기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착륙을 위해 플랩을 내렸다 저 멀리 사막의 황량함도 휴가의 상쾌함도 같이 내려지는 기분


그리고 전체 세 시간 반 딜레이 해서 동네공항 도착. 현지 기온 41도 기장이 안내방송을 하는 순간 기내에서 다 같이 덥다고 짜증 난다면서 결국 올 것이 와버린 휴가 복귀에 다들 웅성댔다 나는 여기서 내리지만 브룸이나 퍼스로 이어서 가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던 하늘에서 불안감을 느꼈던 순간의 기억 마음대로 할수없을 때 얼마나 무기력하고 힘든지 이때 절실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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