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다. 아마 요리를 잘하는 부모님의 영향이 커서 일 것이다. 아버지는 직접 잡은 생선 요리를 매일 해 주었다. 어머니는 매일 쿠키와 빵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가 끓여준 해물 라면 맛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컵케잌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1970년대. 그때에는 베이킹이라는 의미가 없었다. 그런 시절에도 난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1990년 후반쯤 되어서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나는 이미 맛보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사람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절의 음식을 바탕으로 난 새로운 요리에 도전을 많이 했다.
평소에 요리 관련 서적을 많이 모았다. 면 요리에 관심이 많아 만들어 먹어 보고, 새로운 김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언젠간 나만의 특색 있는 요리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 소풍에 햄 계란을 넣은 김밥 도시락을 보냈다.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샌드위치 모양 김밥을 친구들이 다 먹어서 정작 아들은 먹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곤 한 두 달 후쯤, 매달 챙겨 보던 요리 잡지책에서 그 김밥 사진과 조리 과정이 그대로 나왔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잠시 의욕이 떨어지기도 했으나, 요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청년 시절 개성 있는 메뉴로 음식점을 창업하고 싶은 욕심에 요리 학원을 등록했다. 한식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마음만큼 창업은 쉽지 않았다. 생업을 하면서 창업 자금을 모아야 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다시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을 공부했다.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시험을 치르러 가기 전 다리를 다쳐 시험을 포기해야 했다. 원하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다지만, 너무나도 힘든 환경에 난 좌절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김밥이 사이드로 나오는 아주 소문난 국숫집 사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식업 창업은 할 수 없었으나, 요리 학원을 다닌 것은 살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아들은 유난히 병치레를 많이 했다. 열감기와 장에 탈이 자주 났다. 구토와 설사가 심해서 먹지 못 할 때도 책에서 익히고 학원에서 배운 수프요리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내가 음식을 배우고 익힌 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단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