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아들과 대화를 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큰 소리가 오갔다. 격동적인 감정 변화를 느끼고 있는 청소년기 아들은 모진 말로 엄마의 가슴의 비수를 꽂는다. 그리곤 울음을 터트린다.
"넌 네가 화내고 왜 네가 우냐?"
"속상해서 그렇죠."
"속상할 걸 알면서 왜 불효를 하냐?"
"죄송해요."
아들과의 말다툼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주체되지 않던 청소년기가 있었지.' 이유 없이 반항하던 시기가 있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 부모님은 모르게 지나간 사춘기 시절이었다. 아들도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단 생각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들은 그나마 작은 해프닝처럼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어린 청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아들은 충분히 잘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당당한 나였다. 가진 것이 있든 없든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하면 된다고 말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기가 죽어 본 적이 없다. 내가 불우한 집에서 산다고 해서 인간관계에서조차 소심했던 적은 없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은 열심히 노력해서 일구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그저 헛꿈이 되어버렸을 땐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다. 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하며 산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우연히 알게 된 어린 청년과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비하하고 환경을 원망하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가난이 지겹고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사회에 발들인 어린 청년이기에 이해하려 노력했다.
“키울 능력이 없으면 낳지를 마라.”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부모다.”
“돈을 벌어라.”
“왜 노력하지 않냐?”
“아프더라도 노력해 보려고 해 봐라.”
“가난은 대물림된다. 그래서 난 결혼을 못 한다.”
직접 들어본 말들 중 가히 충격이었다. 그 당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지나친 감정 이입이었지만, 실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이었다. 그 부모는 무슨 죄인가? 사랑한 사람과의 결과물이었던 아이. 그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다 이루도록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이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고, 좋은 품질의 물품들을 보면 사주고 싶었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부모의 역할에 충실했을 것이다. 남들처럼 비싼 옷에 비싼 신발을 사주진 못했더라도, 마음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가진 것 없어 마음 아팠을 것이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분명 최선을 다해 자녀를 키웠을 것이다. 그런 부모들에게 왜 칼을 겨누는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이해하겠는가? 그렇다 해도 부모의 마음을 다 알기란 쉽지 않다. 이 청년은 무엇이 잘 못 된 것인가?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와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왜 지금의 환경에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꼭 군대를 갔다 와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에선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환경 적응의 동물이더라는 말처럼 그 환경에 닥쳐보았을 때만 안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청년은 후회할 것이다. 얼마나 모질고 가슴 아픈 말을 뱉은 것인지. 후회할 것이다. 그런들 뱉은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쏟아진 물을 담을 수가 없다. 가슴에 박힌 비수는 세월이 흐른다 해도 뺄 수가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이렇게 못난 자식을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었던 엄마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왜 따끔하게 말해 주지 못했을까? 네가 하는 모든 말들이 네 가슴에 박혀 오랫동안 네 삶을 힘들게 할 것이라는 걸. 지금 네 마음이 가장 가난한 사람 같다고. 몇 해를 더 산 사람으로서 조언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난 청년이 한심스러워 말하기 싫었던 것 같다.